12 내면의 예술가
— 순서가 바뀌면 계기판이 바뀐다
12.1 순서
세상은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대답한다. “나는 아티스트다. 그리고 밥벌이로 의사를 한다.” “나는 아티스트다. 그리고 도구로 코딩을 한다.”
이 순서는 수사가 아니다. 직업이 정체성 앞에 오면, 기능이 본질을 먹는다. “나는 의사인 아티스트”와 “나는 아티스트인데 의사를 한다”는 같은 문장이 아니다. 전자는 시스템이 부여한 자리에서 출발하고, 후자는 자기 감각에서 출발한다.
직업이 먼저 오는 순간, 사람은 자기 삶을 창조하지 않고 관리하기 시작한다.
12.2 계기판
시스템은 자기 유지를 위해 지표를 만든다. 승진, 평가, 연봉, 논문 수, 조회수 — 이것들은 시스템의 계기판이다. 시스템이 자기 부품들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설계한 도구이며,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 계기판을 자기 심장박동으로 착각하는 순간이다. 계기판은 차의 상태를 보여줄 뿐인데, 사람은 그것을 자기 영혼의 상태로 오독한다. 점수가 오르면 성장하고 있다고 안심하고, 점수가 내리면 자기가 무너지고 있다고 불안해한다. 시스템의 지표가 올라가는 것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별개의 사건인데, 순서가 바뀐 사람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
12.3 증상
순서가 바뀐 사람에게는 반복되는 증상이 있다.
지표가 없으면 자기 작업을 못 믿는다. 조회수가 낮으면 글이 나쁜 것이고, 인용이 적으면 논문이 약한 것이라고 자동으로 번역한다. 감각이 아니라 계기판이 판단을 대신하는 상태다.
남의 성공이 곧 자기 실패처럼 느껴진다. 같은 분야의 누군가가 앞서 나가면, 자기 작업의 밀도를 점검하는 대신 상대의 좌표와 자기 좌표를 비교한다. 시스템의 계기판은 순위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 감각은 순위를 모른다 —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작업이 선명한가만 묻는다.
“이걸 해도 되나?”를 먼저 묻는다. 하고 싶은가보다 허락되는가가 앞선다. 시스템의 계기판 안에서는 허락받지 않은 시도가 리스크이고, 리스크는 점수를 깎기 때문이다.
감각으로 운전하지 못하고 계기판만 쳐다보는 상태, 그것이 순서가 뒤집힌 사람의 증상이다.
12.4 야성
젊은 날, 무언가에 미쳐본 적이 있는가. 세상이 말도 안 된다고 했던 그 외침은 미숙했을 수 있어도, 적어도 남의 계기판으로 살지는 않았다.
현실에 밀려 다른 길을 걸었어도, 시스템의 언어에 순응하는 척했어도, 그 감각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내면의 예술가는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래 눌려 있던 감각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12.5 변방
아티스트는 물리적 변방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중심에 서 있어도 자기 계기판을 자기 손에 쥔 사람은 변방의 인간이다. 변방에 있어도 인정과 평판이라는 시스템 지표를 갈망하는 사람은 위치만 변방일 뿐 부품이다. 변방은 장소가 아니라 판단권의 위치다.
아티스트는 중심으로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계기판을 보고 운전하느냐로 갈린다.
12.6 한계
아티스트를 먼저 놓는다고 밥이 자동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시스템 안에서 기능은 해야 하고, 기능하려면 시스템의 언어를 일부 수용해야 한다.
문제는 시스템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점수를 자기 성장이라고 믿는 것이다. 기능의 언어를 빌려 살더라도, 그 언어를 자기 본질로 착각하지 않으면 순서는 지켜진다.
직업이 정체성 위에 오면, 시스템의 점수를 자기 심장박동으로 착각한다. 아티스트는 중심을 향해 기어가지 않는다. 변방에서 깃발을 꽂고 세상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