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예술가

— 아티스트는 변방에서 중심을 재정의한다


순서

세상은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대답한다. “나는 아티스트다. 그리고 밥벌이로 의사를 한다.” “나는 아티스트다. 그리고 도구로 코딩을 한다.”

순서가 중요하다. “나는 의사인 아티스트”와 “나는 아티스트인데 의사를 한다”는 같은 문장이 아니다. 전자는 시스템이 부여한 자리에서 출발하고, 후자는 자기 감각에서 출발한다.

계기판

시스템은 자기 유지를 위해 지표를 만든다. 승진, 평가, 연봉, 논문 수, 조회수 — 이것들은 시스템의 계기판이다. 시스템이 자기 부품들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설계한 도구이다.

문제는 그 계기판을 자기 심장박동으로 착각하는 순간이다. 계기판은 차의 상태를 보여줄 뿐인데, 사람은 그것을 자기 영혼의 상태로 오독한다. 점수가 오르면 성장하고 있다고 안심하고, 점수가 내리면 자기가 무너지고 있다고 불안해한다. 시스템의 지표가 올라가는 것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별개의 사건인데, 순서가 바뀐 사람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

증상

순서가 바뀐 사람에게 나오는 증상이 있다.

첫째, 지표가 없으면 믿지 못한다. 조회수가 낮으면 글이 나쁜 것이고, 인용이 적으면 형편없는 논문이라고 자동으로 번역한다. 감각이 아니라 계기판이 판단을 대신한다.

둘째, 남의 성공이 곧 자기 실패처럼 느껴진다. 시스템의 계기판은 순위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각으로 운전하지 못하고 계기판만 쳐다보는 상태이다.

야성

아주 어릴적 꿈이 기억나는가? 젊을 때 무언가에 미쳐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계기판에 때묻기 전의 순수한 욕망이다.

현실에 밀려 다른 길을 걸었어도, 시스템의 언어에 순응하는 척했어도, 그 감각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내면의 예술가는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래 눌려 있던 감각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변방

아티스트는 중심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변방에서 중심을 재정의하는 존재이며,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천하임을 선언한다.

단, 중심과 변방은 물리적인 개념이 아니다. 중심에 있어도 자기 계기판이 있다면 변방이며 김옥균, 마광수, 허균도 그랬다.

변방에 있어도 인정과 평판이라는 시스템 지표만 갈망한다면 그것은 시스템이라는 중심에 종속된 상태이다.


직업이 정체성 위에 오면, 시스템의 점수를 자기 심장박동으로 착각한다. 아티스트는 중심을 향해 기어가지 않는다. 어디에 서 있든, 자기 계기판을 쥔 자리에 깃발을 꽂고 세상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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