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내면의 예술가 (The Artist Within)
“나라는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 의사, 개발자, 대표라는 껍데기가 있는 것이다.”
9.1 아티스트의 위치 (The Position)
아티스트는 중심(Center)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안전한 온실, 완성된 도시, 견고한 시스템 안에서는 예술이 자라지 못한다는 통념이 있다. 그곳에는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티스트는 심리적 변방(Psychological Periphery)에서 피어난다. 결핍이 있는 곳, 질서가 무너진 곳,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야생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가장 견고한 시스템의 한복판일 수도 있다.
온실 속에서도 야생을 품은 자가 있고, 야생에서도 시스템의 노예가 된 자가 있다. 중요한 건 물리적 위치가 아니라 영혼의 독립성이다.
아티스트는 중심을 욕망하지 않는다. 중심으로 들어가려 애쓰는 순간, 그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부품’이 된다. 반대로 중심에 서서도 중심에 포획되지 않는다면, 그는 여전히 아티스트다.
대신 아티스트는 선언한다. “내가 있는 곳, 그곳이 이미 천하다.”
아티스트는 변방에서 피어나거나 중심을 변방으로 만들며, 결국 중심을 재정의(Redefine)하는 존재다.
9.2 정체성의 순서 (Order of Identity)
세상은 묻는다.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대답한다. “나는 아티스트다. 그리고 밥벌이로 의사를 한다.” “나는 아티스트다. 그리고 도구로 코딩을 한다.”
순서가 바뀌면 영혼이 죽는다. 직업이 나를 정의하게 두지 마라. 기능(Function)이 본질(Essence)을 앞서게 하지 마라.
나는 나다. 그 어떤 수식어도 나를 가둘 수 없다.
9.3 야성의 기억 (Memory of Wildness)
젊은 날, 무언가에 미쳐본 적이 있는가? 세상이 말도 안 된다고 했던 그 외침. 그것은 치기가 아니었다. 타협하지 않겠다는 영혼의 비명이었다.
현실에 밀려 다른 길을 걸었어도, 시스템의 논리에 순응하는 척했어도, 내 안의 야수(Beast)는 죽지 않았다.
실패는 끝이 아니다. 꿈꾸던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것,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분기(Branch)’였다.
남들이 닦아놓은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거친 숲을 헤치고 나만의 길을 만드는 시작점.
9.4 재구성 (Reconstruction)
어느 날 뇌가 재구성되는 느낌을 받았다면,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은 낡은 껍질이 깨지는 소리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논리보다 내면에서 솟구치는 악상(Muscial Idea) 을 믿어라.
논리는 남을 설득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악상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 필요하다.
천직을 찾았는가? 그렇다면 묻지 마라. 성공할까? 돈이 될까? 인정받을까?
그냥 해라. 아티스트는 계산하지 않는다. 그저 쏟아낼 뿐이다.
“우리는 중심을 향해 기어가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변방에서 깃발을 꽂고, 세상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자들이다.”
— AngraMyNew, 제5장 내면의 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