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면의 예술가
“나라는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 의사, 개발자, 대표라는 껍데기가 있는 것이다.”
12.1 아티스트의 위치
아티스트는 중심에서 태어나지 않는다는 통념이 있다. 안전한 온실, 완성된 도시, 견고한 시스템 안에서는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으니 예술이 자랄 수 없다는 논리다.
절반만 맞다. 아티스트는 심리적 변방에서 피어나는데, 그 변방이 반드시 물리적 변두리를 뜻하지는 않는다. 결핍이 있는 곳, 질서가 무너진 곳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가장 견고한 시스템의 한복판일 수도 있다. 온실 속에서도 야생을 품은 자가 있고 야생에서도 시스템의 노예가 된 자가 있으니, 중요한 건 물리적 위치가 아니라 정신의 독립성이다.
아티스트는 중심을 욕망하지 않는다. 중심으로 들어가려 애쓰는 순간 부품이 되고, 중심에 서서도 포획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아티스트다. “내가 있는 곳, 그곳이 이미 천하다.” 아티스트는 변방에서 피어나거나 중심을 변방으로 만들며, 결국 중심을 재정의하는 존재다.
12.2 정체성의 순서
세상은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대답한다. “나는 아티스트다. 그리고 밥벌이로 의사를 한다.” “나는 아티스트다. 그리고 도구로 코딩을 한다.”
이 순서가 바뀌면 정신이 죽는다. 직업이 나를 정의하게 두면 안 되는데, 기능이 본질을 앞서는 순간 정신은 부품이 되기 때문이다.
12.3 야성의 기억
젊은 날, 무언가에 미쳐본 적이 있는가? 세상이 말도 안 된다고 했던 그 외침은 치기가 아니라 타협하지 않겠다는 최초의 선언이었다.
현실에 밀려 다른 길을 걸었어도, 시스템의 논리에 순응하는 척했어도, 내 안의 야수는 죽지 않았다. 꿈꾸던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것은 실패가 아니라 분기였는데, 남들이 닦아놓은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거친 숲을 헤치고 나만의 길을 만드는 시작점이다.
12.4 재구성
어느 날 뇌가 재구성되는 느낌을 받았다면 두려워할 필요 없다 — 그것은 낡은 껍질이 깨지는 소리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논리보다 내면에서 솟구치는 악상을 믿어야 하는데, 논리는 남을 설득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악상은 나를 움직이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천직을 찾았다면 성공할까, 돈이 될까, 인정받을까 따위는 묻지 않는다. 그냥 한다.
- 악상의 시대 — 악상(惡想)의 정의
12.5 맺음
중심을 향해 기어가지 않는다. 변방에서 깃발을 꽂고 세상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