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면세인의 소비

세상은 두 가지를 판다. 하나는 물성이고, 하나는 환상이다.

자동차는 이동하는 기계(물성)이자, 계급의 증명서(환상)다. 호텔은 잠자는 방(물성)이자, 대접받는 느낌(환상)이다.

시스템은 이 환상에 막대한 가격표를 붙인다. 이것을 브랜드 가치라 부르지만, AngraMyNew는 그것을 시스템세라 부른다. 조공은 이 시스템세의 일상적 형태다.

부자는 이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여 시스템의 VIP가 된다. 그러나 면세인은 이 세금 납부를 거부한다.


35.1 동의하지 않는 세계관에는 물성의 비용만 지불한다

면세인의 첫 번째 행위는 남을 끊는 게 아니라, 내 안의 허영을 먼저 베어내는 것이다.

면세인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남이 만든 계급 놀이에 입장료를 내기 싫을 뿐이다.

그들이 만든 세계관(명품 로고, 하차감, 5성급의 허세)이 내 미감과 무관하다면, 면세인은 철저하게 기능만 발라내어 구입한다.

  • 이동이 필요하면 가장 튼튼하고 연비 좋은 차를 산다.
  • 잠이 필요하면 가장 조용하고 깨끗한 숙소를 잡는다.
  • 옷이 필요하면 소재가 가장 좋은 것을 입는다.

이것은 절약이 아니다. 내 취향이 아닌 환상에 대한 조공 거부다.

“나는 당신들의 신을 믿지 않으므로, 당신들의 신전에 십일조를 내지 않겠다.”

35.2 맘에 드는 세계관에는 전부를 태운다

아낀 세금은 어디로 가는가? 통장에 쌓이지 않는다.

내가 매혹된 세계, 내가 지지하는 세계, 내가 닮고 싶은 세계로 흘러들어간다.

면세인은 남들이 이해 못 하는 낡은 고서 한 권에 수백만 원을 쓴다. 단 하나의 영감을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다.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세계관을 구현한 제품이라면, 기능적으로는 무의미해 보여도 기꺼이 전 재산을 붓는다.

이때의 소비는 소비가 아니다. 내가 선택한 세계관에 대한 참여이자, 그 세계에 대한 투표다.

35.3 부자와 면세인

구분 부자 면세인
소비 기준 남들이 알아주는가 (과시) 내 맘에 드는가 (공명)
지출 구조 넓고 얕게 뿌린다 (품위 유지비) 좁고 깊게 찌른다 (취향 구축비)

부자는 시스템이 정해준 가격표대로 사고, 면세인은 가치를 스스로 책정한다.

그래서 면세인은 겉보기에 모순적이다. 경차를 타고 다니면서, 트렁크에는 1억짜리 그림이나 서버 장비가 실려 있다.

35.4 조공을 멈춰야 안목이 생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남의 세계관에 월세를 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샤넬이 만든 세계관에 월세를 내고, 포르쉐가 만든 세계관에 월세를 내고, 아파트 브랜드가 만든 세계관에 월세를 낸다.

그 에너지를 끊어야 한다 — 기능만 남기고 껍데기를 거부해야 한다.

남의 기준으로 쏟던 에너지를 멈추면, 비로소 내 기준을 세울 여백이 생긴다. 여백이 있어야 안목이 자란다. 그렇게 확보한 잉여 에너지를 진짜 사랑하는 세계관에 쏟아야 한다.

기능은 최저가로 매수하고, 취향은 최고가로 매수하라. 단, 그 취향은 오직 네가 선택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네가 만든 세계관에 누군가 입장료를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