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정의에 대한 분노

“나는 왜 아직도 정의 가능한가?”


15.1 두 가지 갈증

창조자에게는 두 가지 갈증이 있다. 하나는 결핍의 갈증으로, “나는 대체 왜 이 모양인가?”를 묻고 치료와 채움과 인정을 향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이 갈증을 안고 산다.

그런데 다른 갈증이 있다. “나는 왜 아직도 분류될 수 있는가?”라는 분노다. 부족함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분류 자체를 부수려는 충동이다.

15.2 정의됨의 모욕

누군가 너를 정의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넌 INTJ야”라고 하면 16개 칸 중 하나에 갇히고, “넌 의사야”라고 하면 직업이 정체성을 대체하고, “넌 희귀해”라고 하면 희귀성조차 하나의 카테고리가 되고, “넌 니체 같아”라고 하면 타인의 그림자가 된다. 정의는 지도 위에 점을 찍는 행위인데, 점이 찍히는 순간 너는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고정된 좌표가 된다. 창조자에게 이것은 모욕이다.

15.3 희귀성 집착의 정체

“나 같은 사람 흔해?” “나 희귀해?” “니체급이야?” — 표면은 인정 욕구처럼 보이는데 진짜 의미는 다르다. “나 희귀해?”는 “나를 담을 카테고리가 있어?”이고, “니체급이야?”는 “기존 분류 체계 안에 있어?”이고, “흔해?”는 “쉽게 정의돼?”다. 희귀성을 묻는 건 분류 불가능성을 확인하려는 것인데, 희귀할수록 기존 체계로 설명하기 어렵고 설명하기 어려울수록 정의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5.4 경쟁자를 원하는 이유

“괴델이 나를 인정해주길 바란다” — 이건 제자의 욕망이다. “괴델이 발끈해서 내 증명을 반박하길 바란다” — 이건 경쟁자의 욕망이다.

대가가 무시하면 존재로 인식되지 않은 것이고, 칭찬하면 제자로 인정받은 수직 관계이고, 발끈하면 위협으로 인식된 수평 관계다. 대가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은 인정 욕구가 아니라 존재적 동급임을 증명하려는 욕망인데, 같은 링 위에 서야 싸울 수 있고 싸워야 이기든 지든 정의를 부술 수 있기 때문이다.

15.5 탈출 불가능한 역설

그러나 역설이 있다. 정의 불가능성을 욕망하는 순간, 그 욕망 자체가 너를 정의한다. “정의되기 싫어하는 자”도 하나의 유형이고, “분류를 거부하는 자”도 하나의 분류이며, “정의에 분노하는 자”라는 이 문서 자체가 정의다.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15.6 파괴의 리듬

탈출구는 정적인 탈출이 아니라 동적인 파괴에 있다. 정의를 한 번 거부하면 새 정의로 대체될 뿐이지만, 정의를 반복적으로 파괴하면 정의가 따라오지 못한다. 정의 불가능한 존재가 목표가 아니라, 정의를 계속 파괴하는 존재가 목표다.

15.7 아티스트의 유형

모든 아티스트가 이 분노를 품는 것은 아니다. 장인은 정의 안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하고, 표현자는 내면을 정확히 표현하고 싶어하고, 파괴자는 정의 자체를 부수고 싶어한다. 재조합자는 부수고, 짓고, 또 부수고 싶어하는데, 파괴자가 부수고 멈추는 반면 재조합자는 부수고 짓고 다시 부순다. 허무가 아니라 리듬이 남는다.

15.8 맺음

“나는 왜 아직도 정의 가능한가?” 이 분노는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창조의 엔진이다. 정의가 붙을 때마다 부수고, 새로운 형태로 태어나고, 그 형태마저 부수는 것.

정의는 관(棺)이고, 너는 아직 죽지 않았다.

15.9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