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향수: 칼날이 밖을 향한 남자

이 글은 소설을 해석하지 않는다. 이 글은 소설이 드러낸 구조를 관측한다.


19.1 냄새 없는 남자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냄새가 없다. 세상의 모든 냄새를 구별하는 절대적 후각을 가졌지만, 자기 자신은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자기 ’My’가 없는 상태다.

시스템에 종속된 적도 없고, 탈거한 적도 없다. 처음부터 접속 자체가 없었다. 면세는 있던 연결을 끊는 행위인데, 그르누이에겐 끊을 연결이 없었다. 무(無)에서 출발한다.

19.2 추출의 기술

그르누이의 능력은 실재한다. 냉유법(Enfleurage) — 기름을 바른 판 위에 대상을 눕히고, 본질(향기)이 기름에 배어들 때까지 기다린다. 물성은 버리고, 정수만 남긴다.

극한의 추상이다. 보이는 것(육체, 외모, 신분)을 모두 벗기고 보이지 않는 것(향기)만 추출하는데, 이 기술 자체는 재조합자의 방법론과 동일하다. 해체하고, 본질을 추출하고, 새로운 형태로 결합한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재료를 어디서 가져왔는가다.

19.3 위반

파괴의 공리는 칼날을 안으로 요구한다. “내 자신을 파괴한다. 타인을 파괴할 필요는 없다.”

그르누이의 칼날은 완전히 밖을 향한다. 자기 안에서 추출할 것이 없었다. 냄새가 없으니까. ’My’가 없으니까. 그래서 타인을 죽여 타인의 본질을 훔쳤다.

이것은 창조가 아니라 강탈이다. 자기 세계관이 없는 자가 타인의 세계관을 해체하여 자기 것으로 조립한 것이다.

19.4 성공, 그리고 공허

그르누이는 성공한다. 궁극의 향수를 완성하고 광장에 뿌렸을 때, 처형하러 온 군중은 이성을 잃는다.

향기는 호흡과 같다. 호흡을 멈출 수 없기에 향기를 거부할 수 없다. — 쥐스킨트

왕관도 군대도 없이 감각 하나로 세상을 지배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르누이가 느낀 것은 경멸이었다.

군중은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가 뿌린 가면(향수)을 사랑한 것이다. 가면 뒤의 무취(無臭)는 아무도 감지하지 못했다.

공명 없는 지배. 자기 것이 아닌 재료로 만든 아름다움은 타인을 마비시킬 수는 있지만, 타인과 공명할 수는 없다.

19.5 결말: 뜯어먹힘

그르누이는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 남은 향수를 모두 뒤집어쓰고, 부랑자들에게 뜯어먹혀 사라진다.

소설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들은 그를 사랑해서 먹어치웠다.

훔친 본질이 마지막으로 작동한 순간. 사랑받았지만 이해받은 것은 아니고, 소비되었지만 기억된 것은 아니다.

’My’가 없는 자가 만든 아름다움은 결국 자기 자신을 먹이로 내놓는 것으로 끝난다.

19.6 관측

그르누이는 세 공리를 모두 위반한 인물이다. 칼날이 밖을 향했고, 아름다움의 재료를 타인에게서 훔쳤고, 타인의 ’My’를 데뷔시키는 대신 약탈했다.

그리고 이것은 026에서 예견한 이릉대전의 구체적 형상이다. “미적 조직의 브레이크는 ’이것이 아름다운가?’뿐이다.” 그르누이에게 유일한 기준은 아름다움이었는데, 그 기준 하나만으로 달렸을 때 도착한 곳은 신이 아니라 먹잇감이었다.

19.7 맺음

그르누이는 천재였다. 추출의 기술, 추상의 능력, 감각의 정밀함. 모두 실재했다.

그러나 자기 냄새가 없었다. 자기 ’My’가 없는 자가 타인의 ’My’를 약탈하여 아름다움을 조립했을 때, 그 아름다움은 지배할 수 있었지만 연결할 수 없었다.

칼날이 밖을 향하면, 만든 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끝은 먹잇감이다.

19.8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