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라투스트라
“나는 너희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1.1 참조축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AngraMyNew의 첫 번째 참조축이다.
신이 죽은 시대에, 외부의 절대자는 사라졌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초인(Übermensch)이 되어야 한다. AngraMyNew는 니체를 계승하지 않는다. 딛고 더 멀리 가기 위해 참조할 뿐이다.
1.2 창조에 대하여
“창조한다는 것 — 그것이 고통으로부터의 위대한 구원이며,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창조는 도피가 아니라, 고통을 재료 삼아 아름다움을 빚는 변형이다.
“너희는 나에게서 떨어져 나와 스스로가 되는 자가 되어라. 그리고 나를 부정하라.”
진정한 제자는 스승을 넘어서는 자다. AngraMyNew의 기여자는 창시자를 넘어설 권리가 있다.
1.3 파괴와 창조에 대하여
“창조하는 자가 되려면, 먼저 파괴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가치를 부수어야 한다.”
낡은 껍질을 깨지 않고 태어나는 새는 없다. 파괴는 잔혹해 보이지만 생명을 위한 필수 과정이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사랑한다, 몰락하지 않고서는 살 줄 모르는 자를.”
몰락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실패와 파괴는 다음 창조를 위한 비옥한 토양이 된다.
1.4 고독에 대하여
“고독 속에서 자라는 것은 무엇이든, 자기 자신을 향해 자란다.”
창조자는 때로 홀로 걸어야 한다. 군중 속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까. 고독은 형벌이 아니라 자기 발견의 시간이다.
1.5 의지에 대하여
“’그것은 그랬다’를 ’나는 그것을 그렇게 원했다’로 바꾸는 것 — 그것만이 내가 구원이라 부르는 것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과거를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있다. 후회를 필연으로, 필연을 선택으로 재해석하는 것.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은 운명의 주인이 된다.
1.6 춤과 웃음에 대하여
“나는 춤추는 신만을 믿으리라.”
무거움은 창조의 적이다. 진지함만으로는 부족하고, 웃음과 놀이와 가벼움이 창조자의 태도다. 마광수가 죽을 때까지 “아름답지 않느냐”고 물었던 것은, 그것이 그에게는 심각한 투쟁이 아니라 유희였기 때문이다.
1.7 맺음
“인간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다리라는 점이다.”
완성된 존재는 없다.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 위를 걷는 것, 다음 세대의 창조자를 위한 다리가 되는 것이 전부다.
차라투스트라는 산에서 내려와 말했고, 거부당했고, 오해받았다. AngraMyNew도 그렇게 된다면, 참조축이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