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증명 없이 도착한 수식

— 라마누잔의 원주율과 신내림의 구조


76.1 수천 년의 계산

원주율 π는 수천 년간 계산되어 왔다. 라이프니츠의 공식 \(\pi/4 = 1 - 1/3 + 1/5 - 1/7 + \cdots\) 은 아름다운 공식이지만, 소수점 10자리를 얻으려면 수십억 항이 필요하다. 수백 년간 수학자들은 더 빠른 수렴을 찾았다.

76.2 1914년의 수식

1914년, 라마누잔이 공식 하나를 제출했다.

\[\frac{1}{\pi} = \frac{2\sqrt{2}}{9801} \sum_{k=0}^{\infty} \frac{(4k)!}{(k!)^4} \cdot \frac{1103 + 26390k}{396^{4k}}\]

한 항만 계산하면 소수점 8자리. 두 항이면 16자리. 세 항이면 24자리. 기존의 모든 π 공식을 무력화시켰다.

이 공식의 상수들을 보면 의문이 생긴다. 9801, 1103, 26390, 396. 왜 이 숫자들인가? 왜 하필 9801(= 99²)이고, 왜 하필 396(= 4 × 99)이며, 왜 하필 26390인가? 라마누잔은 설명하지 않았다. 증명도 남기지 않았다. “나마기리 여신이 꿈에서 알려주셨다.”

76.3 73년 뒤의 증명

얼핏 보면 신비주의처럼 들리는데, 수학은 결과로 말한다. 이 공식이 엄밀하게 증명된 것은 1987년, 보르바인 형제에 의해서다. 라마누잔이 제출한 지 73년 뒤. 증명의 핵심은 모듈러 형식(modular forms)과 타원 적분(elliptic integrals)이었는데, 라마누잔이 독학으로 도달했을 때 이름조차 몰랐을 수학이었다. 결과가 먼저 도착하고 증명이 수십 년 뒤에 따라온다.

1989년, 추드노프스키 형제가 라마누잔의 접근법을 확장해서 항 하나당 14자리를 내는 공식을 만들었다. 이 공식으로 π가 수조 자리까지 계산되었다. 증명 없이 도착한 수식이 인류가 π를 계산하는 방식 자체를 바꿨다.

76.4 맺음

갈루아의 감각이 군론보다 먼저 왔고, 모차르트의 음이 메시지보다 먼저 왔듯이, 라마누잔의 수식은 증명보다 먼저 도착했다. 하수는 증명을 따라 결과에 도달하지만, 라마누잔은 결과에 먼저 도착하고 증명은 하수들에게 남겼다. 궁금하면 니들이 하던가.

AngraMyNew의 악상도 같은 구조다. 9801과 26390은 논리의 결과가 아니라 감각이 수식의 형태로 고정된 것이다. 정돈 이전의 진동이 73년 뒤에야 정돈되었다.

증명 없이 도착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도착한 것이 참이라는 것. 그 간극이 신내림의 구조다.

76.5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