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뜻을 지운 자리

— 이상의 오감도


90.1 의미

시는 뜻을 전달한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짓고, 감정이나 사상을 독자에게 건넨다. 좋은 시는 뜻이 깊고, 위대한 시는 뜻이 보편적이다 — 적어도 그렇게 믿어왔다.

이상(李箱, 1910–1937)은 뜻 전달을 전면에서 내렸다.

90.2 오감도 시제1호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13명의 아이가 도로를 달린다. 길은 막다른 골목이다. 1번부터 13번까지, 무섭다고 한다. 그리고 끝에서 —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고, 달리지 않아도 좋다.

“13”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막다른 골목”이 식민지인지 근대인지 해석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상의 힘은 은유가 아니라 구조에 있다. 번호가 개성을 지운다. 반복이 출구를 지운다. 막다른 골목이 공간을 닫는다. 그리고 끝에서 구조가 열린다 — 막혔던 골목이 뚫리고, 달려야 했던 아이들이 멈춰도 된다.

이 형식적 운동이 시의 본체다.

90.3 발명

뜻을 지우면 구조가 남는다. 그리고 구조는 뜻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근대의 불안을 서술하는 시는 많았다. “세상이 무섭다”, “존재가 불안하다” — 뜻으로 불안을 전달한다. 독자는 뜻을 해석하고, 공감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상은 서술하지 않았다. 번호를 매기고, 반복하고, 골목을 막았다. 불안을 내용이 아니라 형식으로 구현했다. 읽는 사람은 “불안하다”는 문장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과 폐쇄의 구조 안에서 불안을 경험한다.

1934년 조선일보 연재가 시작되었을 때, 독자 항의가 쏟아졌다. “이해할 수 없다.” 맞다. 전달할 뜻이 전면에 없으니까. 이상은 뜻 대신 구조를 주었다.

90.4 맺음

이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난해해서가 아니다.

의미 전달을 뒤로 물렸을 때 남는 것이 무(無)가 아니라 구조라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뜻이 사라진 자리에서 형식이 감각을 발생시킨다. 시는 전달이 아니라 장치가 된다.

뜻을 뒤로 빼면 구조가 남는다. 구조는 뜻보다 세다.

90.5 관련 문서

  • 일반상대성이론 — 아인슈타인은 힘을 지워 기하학을 남겼다. 이상은 뜻을 지워 구조를 남겼다
  • 나가르주나의 공 — 나가르주나는 모든 것을 부정하여 공에 도달했다. 이상은 의미를 부정하여 형식에 도달했다
  • 도스토옙스키 — 도스토옙스키는 충돌을 판결하지 않았다. 이상은 의미를 전달하지 않았다. 둘 다 작가의 역할을 축소한다
  • 라그랑지안 — 라그랑지안은 형식이 물리학을 쓴다. 이상은 형식이 감각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