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고장 난 센서
“센서가 고장 나면 고장 났다는 신호도 사라진다.”
40.1 증상
온도계가 고장 나면 두 가지 중 하나다. 아예 읽히지 않거나, 엉뚱한 값을 표시하거나.
인간의 감각은 후자다. 둔해지면서 “더 잘 본다”고 읽힌다. 수학적 직관이 무뎌지는 걸 “큰 그림을 보게 됐다”로, 반응 속도가 느려지는 걸 “신중해졌다”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드는 걸 “경험이 쌓였다”로 번역한다.
여기서 핵심 버그가 하나 있다. 감각이 고장 났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할 장치도 감각이라는 것이다. 피드백 루프가 끊어져 있다. 센서가 자기 고장을 진단해야 하는데, 진단 도구가 고장의 당사자다.
하디는 이 루프가 작동한 드문 사례다. 『수학자의 변명』에서 자신의 수학적 능력이 쇠퇴하고 있음을 직시했다. 센서가 정상 작동한 대가는 우울이었다. 대부분은 그 직시 자체를 못 한다 — 서른에 풀던 문제를 쉰에 다시 펼치면 “예전보다 본질이 보인다”고 느끼는데, 그게 정말 본질인지 디테일이 안 보이는 것인지 구분할 도구가 이미 편향되어 있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의 수학적 감각도 붕괴 중이다. 그걸 안다고 해서 붕괴가 멈추지는 않는다.
40.2 왜 안 보이는가
자기 몸이 쇠퇴하는 건 본인이 가장 먼저 느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못 느낀다.
한쪽 이유는 외부에 있다. 시스템은 장중 반등을 확대해서 보여주고, 우상향의 교리로 쇠퇴를 가린다. 음의 기울기는 그 외부 메커니즘을 다뤘다.
나머지 절반은 내부에 있다. 느끼는 기관이 같이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의 기울기가 사실의 진단이라면, 이 글은 인지의 병인론이다. 기울기가 음수인 건 사실이고,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건 메커니즘이다.
40.3 마취세
시스템의 다른 세금들은 인지하면 끊을 수 있다. 시스템세에서 열거한 체면세는 체면을 버리면 면세되고, 시간세는 시간 배분을 바꾸면 줄일 수 있다. 인지가 면세의 전제 조건이다.
마취세는 다르다. 과세 대상이 인지 기관 자체다. 세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할 바로 그 감각이 세금에 의해 무뎌지고 있다. 납세 통지서가 오는데, 통지서를 읽는 눈이 안 보인다.
이게 단순한 생물학적 쇠퇴가 아니라 세금인 이유가 있다. 쇠퇴 자체는 자연이다. 시스템이 징수하는 것은 쇠퇴를 인지하지 못한 채 궤도를 수정하지 않는 시간이다. 센서가 정상이었다면 방향을 틀었을 시간을, “아직 괜찮다”는 마취 아래에서 시스템이 가져간다. 빼앗기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능력이 남아 있는 동안 쓸 수 있었던 시간이다.
시스템은 이 자동 마취를 브랜딩한다. “원숙함”, “내공”, “연륜”. 고장 난 센서가 자동 생성하는 위안에 라벨만 붙여주는 것이다. 시스템이 직접 거짓말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고장 난 센서가 이미 만들어낸 거짓말에 편승한다. 이게 마취세가 다른 시스템세보다 교활한 이유다 — 납세자가 자발적으로 자기 세금을 합리화한다.
40.4 생존자 편향
반론이 있다. 감각이 실제로 예리해지는 노년도 존재한다.
카라얀은 80대에 더 정밀한 사운드를 만들었고, 모네는 백내장이 오면서 색채가 오히려 폭발했다. “나이 들어서 더 잘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은 “복권 당첨자도 있다”와 같은 문장 구조다. 당첨자의 존재가 기대값을 바꾸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모네의 백내장은 감각이 안 붕괴된 사례가 아니라 붕괴의 방향이 우연히 새로운 미학을 연 사례다. 가시광선 필터가 바뀐 건 사실이고, 그 바뀐 필터가 수련을 맺은 건 확률이다. 시스템은 이 확률적 예외를 법칙처럼 포장한다 — “숙성된다”, “무르익는다”. 와인 비유는 마취세의 대표적인 브랜딩이다.
40.5 유일한 방어
그러면 내 센서가 고장 났는지 어떻게 아나.
모른다. 이게 마취세의 설계다. 알 수 있었으면 세금이 아니다.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첫째, 센서를 외부화하는 것. 자기 감각을 판사로 세우지 말고 바깥의 눈을 빌린다. 작업의 질을 자기 느낌이 아니라 결과물의 밀도로, 성장 체감이 아니라 자기 바깥의 기준으로 측정하는 것. 시스템이 파는 KPI가 아니라, 자기 세계관이 설정한 외부 기준이다. 내 센서를 못 믿겠으면 남의 센서를 빌려라 — 그 센서도 완벽하진 않지만, 자기 센서 하나만 붙드는 것보다는 덜 위험하다. 하디가 자기 쇠퇴를 직시할 수 있었던 것도 이것이다 — 자기 느낌이 아니라 논문의 밀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둘째, 감각 대신 구조를 기준으로 삼는 것. 음의 기울기가 수학적 사실을 제공한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구조는 감각보다 덜 속인다. 기울기가 음수라는 명제는 네 센서 상태와 무관하게 성립한다.
외부화가 마취세의 직접적 방어라면, 구조는 우회적 방어다. 둘 다 같은 원칙에 서 있다 — 고장 난 센서로 자기 안을 들여다보지 마라.
40.6 맺음
“요즘 뭔가 더 잘 보인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면, 센서부터 점검해라. 잘 보이는 게 아니라, 못 보는 것이 안 보이는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