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없는 기하학을 지었다
— 조합론의 호지 이론
107.1 셈
그래프 하나를 색으로 칠한다. 변으로 이어진 두 꼭짓점은 서로 다른 색이어야 한다. 쓸 수 있는 색이 \(q\)가지일 때, 칠하는 방법의 수는 \(q\)에 대한 다항식이 된다. 삼각형이면 \(q(q-1)(q-2)\)다.
이 다항식의 계수들을 절댓값으로 늘어놓으면 수열 하나가 나온다. 경우의 수를 센 결과일 뿐이다.
107.2 형태
1968년, 리드가 그 수열을 두고 이상한 추측을 했다. 봉우리가 하나뿐일 것이다 — 올라갔다 내려오기만 하고, 한 번 꺾이면 다시 솟지 않는다. 가운데가 양 끝보다 두툼한, 매끄러운 산 모양. 식으로는 이렇게 쓴다.
\[a_i^2 \geq a_{i-1} \cdot a_{i+1}\]
이상한 것은 이 점이다. 세는 일에는 모양을 강제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셈은 셈이지 곡선이 아니다. 그런데 다 세고 나면, 결과가 매번 같은 모양으로 앉는다.
왜 셈이 형태를 갖는가. 수십 년간 조합론의 도구로 증명을 시도했고, 번번이 막혔다.
107.3 보증
기하학에는 조합론에 없는 보증이 하나 있다.
매끄러운 공간이기만 하면, 그 공간에서 뽑아낸 어떤 수들은 저절로 봉우리 하나짜리 부등식을 만족한다. 호지–리만 관계라 부른다. 공간이 자기 모양을 수에 새겨 넣는 것이다. 매끄럽다는 사실 하나가 형태를 보장한다.
리드의 수열이 정확히 그 모양이었다. 그러니 길은 분명해 보였다 — 저 수열 뒤에서 매끄러운 공간을 찾아내, 기하학의 보증을 빌려오면 된다.
문제는, 그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107.4 건설
색칠 다항식 뒤에 숨은 대상을 매트로이드라 한다. 무엇과 무엇이 얽혀 있고 무엇이 홀로 자유로운지, 그 얽힘의 뼈대만 추린 구조다. 일부 매트로이드는 좌표로 그릴 수 있어서, 그 밑에 진짜 기하학적 공간을 깔고 보증을 빌려올 수 있었다. 거기까지는 뚫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매트로이드는 좌표로 그려지지 않는다. 매끄러운 공간이 아니고, 곡률도 차원도 고전적 의미로는 없다. 호지 이론이 살 수 있는 땅이 아니다. 빌려올 보증의 출처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2018년, 아디프라시토와 허준이와 카츠가 길을 바꿨다. 보증을 빌려오는 대신, 보증이 작동할 공간을 직접 지었다. 매끄러운 기하학이 없는 자리에, 호지–리만 관계가 성립하도록 기하학의 뼈대만 새로 세운 것이다.
세우고 나자 보증이 작동했다. 봉우리 하나짜리 형태가 따라 나왔고, 반세기의 추측이 닫혔다.
107.5 맺음
이 증명이 아름다운 것은 오래된 난제를 풀어서가 아니다.
셈의 형태는 셈의 언어 안에서 증명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셈 바깥의 기하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하학은 어디에도 없었다. 찾을 수 없으면 보통 거기서 멈춘다. 여기서는 멈추지 않고, 없는 것을 지었다.
셈의 형태는 셈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기하학이 없었으므로, 지었다.
107.6 관련 문서
- 세지 않고 센다 — 생성함수는 숨어 있던 구조를 드러냈다. 여기서는 없는 구조를 새로 지었다
- 구성 없는 존재 — 에르되시는 만들지 않고 존재를 증명했다. 이쪽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 증명했다
- 보이지 않던 인수 — 가우스 정수는 좌표를 넓혀 인수를 드러냈다. 여기서는 기하학을 세워 형태를 드러냈다
- 갈루아와 5차방정식 — 갈루아는 구조가 답의 존재를 결정한다고 보였다. 여기서는 구조가 셈의 형태를 결정한다고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