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죽음: 시스템이 징수하는 마지막 세금

— 시스템 납세자의 최종 파산 선고문


37.1 후회가 아니라 장부다

아래는 ’죽을 때 가장 많이 하는 후회 4가지’로 흔히 말해지는 것들이다.

  1. 나다운 삶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았다.
  2.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하며 살 필요가 없었다.
  3. 내 감정을 더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4. 가족, 친구들과 좀 더 연락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이 목록을 읽고 그냥 “그래, 가족을 더 사랑해야지” 정도로 끝내면 이 텍스트는 반쯤만 읽은 것이다. 이 문장들은 감상문이 아니라 장부에 가깝다. 평생 시스템에 종속되어 자동 결제를 반복하던 사람이, 죽음이라는 강제 집행 앞에서 마지막으로 받아보는 정산서다.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무엇을 빼앗겼는지가 보인다. 나다운 삶을 못 살았다는 말은 체면세를 너무 오래 냈다는 뜻이다. 부모의 기대, 사회의 시선, 평균이라는 이름의 궤도 속에서 남의 매뉴얼을 내 삶처럼 수행한 대가다. 입지 않는 명품, 타지 않는 차, 보여주기 위한 평수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더 깊은 데서, 내 세계관을 세우는 대신 남의 좌표계 안에서 평생 체면 유지비를 자동 결제해왔다는 뜻이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은 시간세의 확인이다.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시스템에 납부하고, 남은 자투리를 내 삶이라고 부른 결과다. 그동안은 커리어라고 믿었고 성취라고 믿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전원이 꺼지기 직전에 돌아보면, 그 시간이 정말 누구의 배를 불렸는지가 보인다. 대개는 남의 것이다.

감정을 더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다는 후회도 마찬가지다. 분노해야 할 때 삼켰고, 싫은데 웃었고, 모욕 앞에서 “알겠습니다”를 반복했다. 이건 단순한 소심함이 아니라 감정세의 장기 납부다. 칼날을 안으로 돌려 자기를 벼리는 대신, 시스템의 평화를 위해 자기 진동을 먼저 거세해온 결과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더 닿지 못했다는 말도 연락 빈도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공명은 시스템이 배정한 인맥, 직장 동료, 학연, 비즈니스 네트워크 바깥에서 일어난다. 내 세계를 감지하고 거기에 자발적으로 접속해온 사람들, 혹은 내가 기꺼이 들어가야 했던 타인의 세계. 그런데 종속자는 늘 가짜 연결을 유지하느라 에너지를 다 쓴다. 형식적인 안부와 의무적 식사로 최소한의 접촉만 반복하다가, 정작 자기 세계의 밀도를 알아보고 머물렀을 사람들을 놓친다. 이것이 공명세다.

그래서 이 후회들은 서로 다른 조언이 아니라 한 문장의 네 변주다. 평생 시스템세를 냈다는 말.


37.2 죽음 앞에서 환불은 없다

이 정산서가 무서운 이유는, 죽음이 모든 연결을 끊는 궁극의 절단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완벽한 1인용 게임이다. 누구도 대신 죽어주지 않고, 어떤 시스템도 그 집행을 유예해주지 않는다.

초원의 숫사자를 떠올리면 쉽다. 가장 찬란한 갈기를 흔들며 무리를 이끌던 제왕도 늙고 힘이 다하면 결국 혼자 밀려나 죽는다. 자연은 종속자에게도 주권자에게도 같은 고독을 집행한다. 죽음 앞의 고독 자체는 누구에게도 면제되지 않는다.

차이는 그 고독을 받아들이는 순간 무엇이 켜지느냐에 있다.

평생 시스템이라는 큰 무리 안에 숨어 체온을 빌려 살던 사람에게 죽음은 순수한 압류다. 이제 아무도 환불해주지 않는다는 사실만 남는다. 그렇게 바친 체면, 시간, 감정, 공명은 끝내 되돌아오지 않는다.

반대로 면세를 통과해 자기 세계를 지은 사람도 똑같이 혼자 죽는다. 다만 그가 고독을 받아들이는 순간, 바깥에서 오던 체온 대신 자기 안에 쌓여 있던 열이 켜진다. 자기가 만든 밀도, 자기가 통과한 공명, 자기가 살려낸 세계가 마지막으로 내부에서 울린다. 고독의 크기는 같아도, 그 고독이 비어 있느냐 차 있느냐는 달라진다.

그래서 죽음은 마지막 면세가 아니다. 죽는 순간 모든 자동 결제가 끊긴다고 해서 그게 면세는 아니다. 면세는 내 손으로 자동 결제를 끊는 일이고, 죽음은 우주가 강제로 모든 것을 회수하는 일이다. 주체가 내가 아니므로, 그것은 면세가 아니라 압류다.


37.3 그래서 지금 끊으라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 바로 “그러면 회사를 때려치우라는 거냐”고 묻게 된다. 아니다. 병든 부모를 돌보는 사람, 아이의 학비를 대는 사람, 빚의 루프에 갇힌 사람에게 당장 면세하라고 말하는 것은 구조를 모르는 자의 폭언이다. 매춘의 위상학이 보여주었듯 출구가 없는 구조에서는 절단 프로토콜도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방향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면세는 전부 아니면 전무가 아니다. 한 번에 인생 전체를 뒤집지 못하더라도, 자동 결제 하나를 끊는 것부터 시작할 수는 있다. 체면세부터일 수도 있고, 감정세부터일 수도 있고, 시간세부터일 수도 있다. 순서는 없다. 중요한 것은 삶 전체를 오늘 당장 구원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 없이 빠져나가던 에너지 하나라도 내가 다시 잡는 방향이다.

그렇게 회수된 에너지가 아주 작아도 상관없다. 글 한 편, 곡 하나, 대화 하나, 혹은 타인의 세계에 한 번 진심으로 접속하는 일. 확장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살아 있는 동안 내 손으로 끊어본 사람만이, 죽음이 왔을 때 그것을 압류로만 맞지 않는다.


37.4 맺음

죽음은 시스템이 징수하는 마지막 세금이다. 정확히 말하면, 평생 미뤄둔 정산서를 한꺼번에 들이미는 순간이다.

살아 있는 동안의 면세만이 진짜 면세다. 죽음이 끊어주는 자동 결제는 빈 금고의 봉인에 불과하다.

37.5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