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프로듀스101: 곡률을 선지급하는 기계
“국민 프로듀서 여러분, 안녕하세요.”
55.1 먼저 데뷔가 온다
프로듀스101이 처음 던진 발명은 단순했다. 101명의 연습생을 한곳에 세워두고, 시청자에게 그중 11명을 뽑게 한다. 그런데 진짜 발명은 숫자가 아니었다. 데뷔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데뷔한 것 같은 곡률을 먼저 붙여버린 데 있다.
연습생이 첫 무대에 오를 때 아직 작품은 없다. 앨범도 없고, 자기 노래도 없고, 자기 세계를 밀어붙인 시간도 없다. 그런데 카메라가 얼굴을 잡고, 편집이 서사를 붙이고, 직캠이 올라가고, 커뮤니티에서 이름이 돌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곡률은 생긴다. 창조의 공리가 말하는 순서는 원래 밀도 다음에 곡률이다. 작품이 먼저 있고, 세상이 그 뒤에 기울어와야 한다. 프로듀스101은 이 순서를 뒤집는다. 밀도가 증명되기 전에 곡률이 선지급된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오디션이면서도 오디션이 아니다. 실력을 겨루는 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데뷔의 예고편을 먼저 유통하는 기계다. 시즌 1의 IOI, 시즌 2의 워너원, 프로듀스48의 아이즈원, 시즌 4의 X1까지 이어지고, 조작 스캔들 이후에도 포맷이 죽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기계는 사람을 뽑는 것보다 먼저, 사람 주위의 중력을 만든다.
55.2 국민 프로듀서라는 거짓말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라고 부른다.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프로듀서론에서 프로듀서는 밀도가 세상에 도착할 회로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프로듀스101에서 그 회로를 설계한 것은 시청자가 아니다. 포맷을 만든 PD, 무대를 짠 디렉터, 편집실에서 서사를 조립한 편집자, 분량을 나누고 긴장을 설계한 제작진이 진짜 프로듀서다. 시청자는 마지막 버튼을 누를 권한을 받았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스카우터론과도 갈린다. 스카우터는 곡률이 생기기 전에 밀도를 읽는 눈이다. 그런데 프로듀스101의 시청자는 대개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편집이 붙여놓은 서사를 보고 반응한다. 분량을 많이 받은 참가자는 잘 보이고, 분량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된다. 모두가 본 뒤에 알아보는 건 감별이 아니라 결제에 가깝다.
물론 예외는 있다. 직캠만 파고들어 분량이 적은 참가자를 발굴하는 시청자도 있다. 그런 경우는 감별에 더 가깝다. 하지만 포맷 전체로 보면 중심은 여전히 결제다. 문자 투표, 앱 투표, 온라인 투표, 실시간 반응. 전부 시간과 감정을 지불하는 행위다. 프로듀서라는 말은 참여의 감각을 과장하는 이름이고, 실제로는 소비를 민주주의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치다.
55.3 슬롯과 조작
이 기계 안으로 101명이 들어가지만, 끝까지 살아남는 서사는 몇 개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압도하는 사람, 서툴다가 자라는 사람, 악편의 희생자가 되는 사람, 반전을 만드는 사람, 비주얼로 먼저 잡히는 사람. 포맷은 101개의 My를 다룰 능력이 없다. 그래서 사람을 보는 대신 슬롯을 만든다. 사람은 그 슬롯 안에 들어갈 때만 보인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분량은 서사를 만들고, 서사는 곡률을 만들고, 곡률은 다시 투표를 만든다. 그러니 슬롯에 들어가지 못한 My는 나빠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보일 화면을 받지 못해서 밀려난다. 프로듀서론이 경고한 가장 쉬운 타락, 곧 밀도를 규격품으로 가공하는 일이 여기서는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포맷의 기본 동작이 된다.
투표 조작 사건도 같은 선 위에 있다. 시즌 2부터 시즌 4까지 최종 순위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많은 사람은 그것을 사고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포맷을 끝까지 밀고 가 보면, 조작은 외부에서 난 균열이라기보다 내부 논리의 연장처럼 보인다. 편집이 곡률을 만들고, 곡률이 투표를 만들고, 투표가 다시 서사를 강화하는 기계라면, 마지막 결과까지 직접 제조하고 싶은 유혹은 구조 안에 이미 들어 있다.
매춘의 위상학의 언어를 빌리면, 여기서 PD는 참가자의 밀도를 자기 현금흐름과 자기 의도로 환전하는 자리에 선다. 타인의 데뷔에 대한 정산권을 장악하는 순간, 그는 프로듀서라기보다 포주에 가까워진다.
55.4 그런데 왜 안 죽는가
그럼에도 이 포맷은 죽지 않았다. 한국 본가는 무너졌는데도 이름을 바꿔 계속 돌아갔고, 다른 나라로도 건너갔다. 이유는 프로그램이 공정해서가 아니다. 시청자가 완성된 아이돌보다, 데뷔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더 강하게 소비하기 때문이다.
프로듀스101이 파는 것은 그룹이 아니라 데뷔의 경험이다. 연습생이 처음 무대에 서서 떨고, 다음 라운드에서 조금 나아지고, 팀이 맞춰지고, 마지막 무대에서 터지는 순간까지 따라가는 경험. 각인: 궤도의 곡률이 말한 것처럼, 정보는 설명하지만 목격은 연다. 시청자는 완성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사람의 데뷔를 처음부터 봤다”는 목격의 권리를 산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진짜가 섞여 있다. 날것의 몸, 데뷔를 갈망하는 얼굴, 탈락 직전의 공포, 끝까지 버티는 독기. 이런 것은 편집이 과장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발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기계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가끔 진짜를 뽑아낸다. 청하, 세정, 전소미, 강다니엘, 장원영, 미야와키 사쿠라, 권은비, 김채원 같은 이름들은 포맷이 밀도를 창조했다기보다, 이미 있던 밀도에 최초의 곡률을 붙였던 경우로 읽는 편이 맞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글도 단순하게 욕만 할 수는 없다. 프로듀스101은 밀도를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아직 자기 회로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 첫 중력을 붙여주는 일은 실제로 한다. 문제는 효율이 아니라 비용이다. 밀도가 없는 사람에게도 곡률을 선지급하고, 밀도가 있는 사람의 My는 포맷이 다루기 쉬운 크기로 잘라낸다. 기계는 데뷔를 앞당기는 대신, 데뷔할 사람의 형태를 미리 결정하고 싶어 한다.
55.5 한계
이 글도 너무 깨끗하게 말하면 틀어진다. 모든 무대에는 조명과 카메라와 음향이 들어간다. 그러니 순수한 밀도와 제조된 곡률을 칼로 자르듯 나눌 수는 없다.
또 시청자 전부를 결제자로만 볼 수도 없다. 실제로는 직캠과 현장 반응을 통해 편집 바깥의 참가자를 발견하는 사람도 있다. 포맷의 기본 문법이 결제를 유도한다고 해서, 모든 시청 경험이 똑같지는 않다.
끝으로 이 글은 한국의 프로듀스 시리즈를 중심으로 썼다. 일본판과 최근의 파생 포맷은 투표 구조와 편집 문법이 달라서, 무엇이 그대로 남고 무엇이 바뀌는지는 따로 다뤄야 한다.
55.6 맺음
프로듀스101은 데뷔를 발견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데뷔를 먼저 유통하고, 그 뒤에 사람을 끌어오는 기계다.
그 기계는 조작을 낳았고, 조작 뒤에도 살아남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여전히 타인의 데뷔를 목격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