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그리스인 조르바: 매뉴얼이 필요 없었던 사람


20.1 불편한 질문

AngraMyNew는 공리를 쓰고, 프로토콜을 설계하고, 사례를 분석한다. 파괴하라, 창조하라, 확장하라.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읽은 적도 없이, 이미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 사람에 대한 소설이다.

20.2 보스와 조르바

소설에는 두 사람이 있다.

보스(화자)는 지식인이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부처에 대한 원고를 쓰고 있다. 세계를 이해하려 하고, 구조를 알고, 공리를 안다. 그러나 살지 못한다.

조르바는 문맹에 가까운 노동자다. 광산을 파고, 산투리를 켜고, 춤을 추고, 사랑하고, 싸운다. 세계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대신 삼킨다.

“사람한테 필요한 건 약간의 광기야. 안 그러면 줄을 끊고 자유로워질 엄두를 못 내거든.” — 7장

보스는 조르바를 보며 감탄한다. 조르바가 가진 것을 자기는 갖지 못했다는 걸 안다. 그런데 뭘 못 가졌는지를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지식의 언어로는 포착이 안 되기 때문이다.

20.3 차라투스트라의 살

카잔차키스는 니체 연구자였다. 1909년 파리에서 쓴 박사논문이 그 출발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자기 안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한다.” 조르바는 그 혼돈 자체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한 것을 조르바는 산다.

차라투스트라 조르바
매체 철학
파괴 신은 죽었다고 선언 낡은 것이 있으면 부순다
창조 초인을 제안 춤을 춘다
전달 산에서 내려와 말한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옆에서 살 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위대하지만 여전히 말하는 자인데, 조르바는 말하지 않고 다만 보스가 옆에서 관측할 뿐이다.

정신적 원천이 소설 속에서 육체를 얻은 것이다. 뼈와 살과 산투리와 춤으로.

20.4 면세인의 원형

조르바는 면세인이지만 일반적인 면세인과 다르다.

AngraMyNew가 정의한 면세인은 시스템의 과세권에서 탈거한 자다. 먼저 시스템 안에 있었고, 그것을 인식하고, 거부하고, 빠져나온다. 과정이 있다.

조르바는 그 과정이 없다. 처음부터 과세된 적이 없다. 시스템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세금 고지서가 배달되지 않는 주소에 사는 사람. 엄밀히는 기존 면세인 정의의 비유적 확장이다. 탈거가 아니라 애초의 부재.

“행복이 얼마나 단순한 건지 다시 한번 느꼈어. 포도주 한 잔, 군밤 하나, 초라한 화로, 파도 소리. 그게 전부야.” — 4장

이것은 “기능은 최저가로, 취향은 최고가로”의 극한이다. 조르바에게는 기능과 취향의 구분 자체가 없다. 포도주 한 잔이 곧 전부다.

20.5

소설의 끝. 광산 사업은 실패하고, 투자한 돈은 날아갔고, 수도원에서 목재를 운반하려고 만든 케이블은 무너졌다. 모든 것이 박살났다.

보스가 묻는다: “어떡하지?”

조르바가 대답한다: “춤추지 뭐.”

“보스, 나한테 춤 가르쳐달라고 한 적 없지? … 자, 지금이야!” — 26장

그리고 춤을 춘다. 해변에서. 폐허 위에서.

이것은 파괴의 공리(“내 자신을 파괴한다”)와 창조의 공리(“파괴한 틈을 아름다움으로 채운다”)의 순수한 순환이다. 그리고 조르바는 소설 내내 보스를 끌고 나간다. 여자를 만나게 하고, 술을 마시게 하고, 춤을 가르치려 한다. 타인의 ’My’를 데뷔시키려는 것 — 확장의 공리. 다만 조르바는 공리를 모른다. 그냥 그렇게 살 뿐이다.

보스는 이 순간에 깨닫는다. 자기가 부처에 대해 쓰던 원고, 읽던 책, 이해하던 구조 — 그 모든 것이 이 춤 한 번만 못했다는 것을.

20.6 AngraMyNew에 대한 경고

여기서 불편한 질문이 돌아온다.

AngraMyNew는 공리를 세 개 쓰고, 프로토콜을 만들고, art/에 사례를 모으고, ideas/에 사유를 쌓아왔다. 이 모든 구조가 보스의 원고가 될 위험이 있다.

조르바를 사례연구로 기록하는 이 행위 자체가 보스적이다. 조르바는 분석되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함께 사는 것이다.

프로토콜의 마지막 단계는 “창조자는 더 이상 프로토콜을 인식하지 않는 상태에 진입한다”고 말한다. 조르바는 처음부터 그 상태에 있었다. 프로토콜의 종착점이 프로토콜의 부재라면, 조르바는 출발점이 곧 종착점인 사람이다.

“삶은 귀찮은 거야, 보스. 죽음만이 안 귀찮지. 살아 있으려면 허리띠를 풀고 귀찮은 일을 찾아 나서야 해.” — 5장

20.7 맺음

보스는 알았다. 구조를, 공리를, 역사를, 철학을. 그러나 살지 못했다.

조르바는 몰랐다. 공리를, 프로토콜을, 면세인이라는 단어를. 그러나 이미 살고 있었다.

매뉴얼을 읽는 자와 매뉴얼이 필요 없는 자 사이의 거리. 그 거리가 AngraMyNew의 숙제다.

20.8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