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상처의 좌표
— 밀도가 곡률이 되는 한 가지 조건
34.1 가장 찬란한 실패
곡률 없는 밀도는 밀도와 곡률 사이에 이름 없는 경계 조건이 있다고 인정하고 멈췄다. 이 글은 그 경계 조건 하나에 이름을 붙인다.
김옥균은 스물둘에 알성시 장원을 했다. 알성시는 왕이 성균관 문묘에 참배한 뒤 명륜당에서 직접 주관하는 시험인데, 조선 오백 년 동안 쉰일곱 번밖에 열리지 않았고 합격자가 사백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시험에서 1등을 했으니 왕 앞에서 이름이 박혔다. 서재필, 박영효, 서광범이 기울어왔고, 후쿠자와 유키치가 반했고, 고종이 총애했고, 외교관들이 주목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진면목은 갑신정변이 무너지고 일본으로 도망친 뒤에 드러난다. 도망자 신분으로 17대 혼인보 슈에이와 6점 접바둑을 두어 이겼고, 슈에이는 오가사와라든 홋카이도든 유배지가 어디든 배를 타고 찾아가 석 달씩 바둑을 뒀다. 둘 다 가난해서 밥상을 바둑판으로 쓴 적도 있다.
홋카이도 연금 시절에는 하코다테 온천여관에서 만난 게이샤 오타마와 살림을 차렸고, 오사카에서는 기거하던 집 주인의 어머니에게서 아들이 태어났고, 오타루에서 만난 기생에게서도 아이가 생겼는데 이 아이들을 전부 거두어 함께 살았다. 오가사와라 유배 중에는 섬의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는데, 이때 만난 소년 와다 엔지로는 김옥균의 최측근이 되어 십 년 뒤 상하이까지 따라갔고, 암살 현장에도 함께 있었다.
자객에게 쫓기는 도망자가 가는 곳마다 사람을 끌어당겼다. 사람이 기울어오는 힘으로 치면 — 개인 곡률로 치면 — 동시대 어떤 개혁자보다 강했을 것이다.
갑신정변은 곡률이었다. 3일 동안 조선의 판이 뒤집어졌다. 고종은 이후 10년간 자객을 보냈다 — 무시할 수 있는 사건이었으면 자객이 필요 없다. 곡률은 생겼다. 다만 3일 만에 꺼졌고, 10년을 떠도는 동안 다시는 켜지지 않았다.
34.2 대조군
사카모토 료마는 김옥균과 거의 같은 사람이다. 젊고, 파격적이고, 기존 질서에 안 맞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고, 암살당했다. 그런데 료마 쪽은 곡률이 꺼지지 않았다. 삿초동맹이 성립했고, 막부가 무너졌고, 메이지유신이 시작됐다.
사람이 비슷하고 곡률도 둘 다 생겼는데 한쪽만 버텼으면, 사람이 아니라 바닥이 달랐다는 뜻이다.
일본은 이미 아팠다. 페리의 흑선이 와서 불평등 조약을 맺었고, “이대로면 식민지가 된다”는 공포가 무사 계급 전체에 깔려 있었다. 료마는 그 통증 위에 올라갔다 — 삿초동맹이 성립한 건 료마가 천재여서가 아니라 사쓰마와 조슈라는 두 번(藩)이 이미 아팠기 때문이다.
34.3 아프긴 아팠다
조선도 아팠다. 민란이 반복됐고, 외세가 밀려왔고, 척족정치가 조정을 갉아먹고 있었다. 아프지 않았던 게 아니다. 아픈 자리가 달랐다.
백성이 느끼는 통증은 세금과 부패와 굶주림이었다 — 이 체제 안에서 숨통이 트이면 됐다. 조정이 느끼는 통증은 세력 다툼이었다 — 개혁이 아니라 권력이 필요했다. 위정척사파가 느끼는 통증은 외세 침입이었다 — 문을 닫으면 됐다.
김옥균의 처방은 근대 국가였다. 맞는 진단이었지만 사람들이 아파하는 자리와 다른 곳을 눌렀다. 굶주림의 자리에 헌법을 놓으면 사람은 돌아보지 않는다.
루터는 달랐다. 면벌부에 곪아 있던 사람들에게 “교회 없이도 구원받는다”고 말했다. 아픈 자리를 정확히 눌렀고, 처방이 그 자리에 꽂혔다.
34.4 경계 조건
여기서 원리가 하나 나온다.
곡률이 꺼지지 않은 경우를 보면 하나가 겹친다 — 밀도가 사람들이 이미 느끼고 있던 상처 위에 올라갔다. 객관적 상처가 아니라 체감하는 상처. 밀도만으로도 순간 곡률은 만들 수 있다 — 갑신정변이 그 증거다. 하지만 상처와 겹치지 않은 곡률은 버티지 못한다. 이것이 047이 남겨둔 경계 조건의 한 면이다.
개인 곡률과 문명 곡률이 다른 이유도 여기 있다. 김옥균은 만나는 사람마다 기울어오게 만들었지만, 그건 개인의 매력이었다. 문명 곡률은 한 사람의 매력이 아니라 시대의 상처와 밀도가 겹칠 때 생긴다. 장원급제도, 사교성도, 배포도 상처의 좌표를 바꾸지는 못한다.
34.5 세 가지 언어
이 원리를 언어의 관점에서 보면 세 가지 길이 갈린다.
루터와 칼뱅은 내부 언어로 싸웠다. 성경, 믿음, 구원, 소명 — 사람들이 이미 아는 말로 아픈 데를 눌렀다. 빠르게 퍼졌다. 다만 내부 언어는 기존 체계에 다시 흡수될 위험이 있다 — 개신교가 결국 또 다른 제도가 된 것처럼.
김옥균은 외부 언어로 싸웠다. 근대 국가, 입헌군주제, 재정 개혁 — 조선에 아직 착지하지 않은 말이었다. 내용은 미래였지만 공동체에는 외세의 말로 읽혔고, 일본과 연결되는 순간 배신의 냄새를 뒤집어썼다.
셋째 길이 있다. 말은 새로 만들되, 그 말이 닿는 감각은 이미 사람 안에 있는 것을 쓰는 길이다. “시스템세”라는 말은 새롭지만, 체면·학위·직장·가족 기대 때문에 몸이 닳는 감각은 이미 있다. “고장 난 센서”라는 말은 새롭지만, “요즘 뭔가 더 잘 보인다”고 착각해본 경험은 이미 있다. 새 이름이 이미 있는 통증에 꽂히면 새 언어가 내부 언어가 된다.
내부 언어는 빠르게 퍼지지만 기존 체계에 다시 흡수된다. 외부 언어는 정확할 수 있지만 거부당하기 쉽다. 새 언어가 이미 있는 상처 위에 놓이면 느리지만 흡수당하지 않는다 — 빌려온 말이 아니니까.
34.6 한계
이 글이 제시한 것은 경계 조건 하나다. 047이 인정한 문턱의 전부가 아니라 한 면이다. 상처의 좌표가 맞았는데도 곡률이 버티지 못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 인프라가 없어서, 타이밍이 어긋나서, 우리가 이름 붙이지 못한 다른 조건이 있어서. 하나를 이름 붙였다고 전부를 안 것은 아니다.
또한 “사람들이 느끼는 상처”는 사후적으로만 확인된다. 루터가 면벌부를 누르기 전에 “여기가 아픈 자리”라고 미리 알 수 있었을까. 대개는 눌러봐야 안다. 그래서 이 원리는 예측 도구가 아니라 사후 진단에 가깝다.
34.7 맺음
곡률이 버틴 자리에는 상처가 먼저 있었다. 곡률이 꺼진 자리에는 밀도가 상처를 비껴갔다.
김옥균은 가장 찬란한 밀도였고, 너무 이른 진단이었고, 가장 잔인한 실패였다. 곡률은 생겼다. 3일 동안. 사람들이 아직 그곳을 아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4.8 관련 문서
- 곡률 없는 밀도 — 이 글이 남겨둔 경계 조건의 한 면
- 고장 난 센서 — 새 이름이 이미 있는 감각에 꽂히는 경우
- 5인의 선현 — 김옥균, 자기 자리에서 죽은 사람
- 버려진 좌표 — 좌표의 다른 용법
- 세 번째 처방: 전염, 이식, 유도 — 칼뱅의 설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