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하나의 숫자


30.1 스카우터

드래곤볼에 스카우터라는 장치가 있다. 눈에 착용하고 상대를 보면 전투력이 숫자 하나로 뜬다. 강한지 약한지, 숫자 하나로 끝. 이 단순함이 독자들을 빠져들게 했다.

야구에서 이것을 실현한 사람들이 있다.

30.2 낡은 좌표계

야구에는 오래된 숫자들이 있었다. 타율, 다승, 방어율.

타율은 안타를 타수로 나눈 것이다. 볼넷을 고려하지 못하고, 1루타와 홈런을 같은 가치로 친다. 다승은 투수가 이긴 횟수인데, 타선이 점수를 안 주면 아무리 잘 던져도 이기지 못한다. 방어율은 9이닝당 자책점인데, 수비수가 잡아줬는지 빠뜨렸는지에 따라 같은 투구가 다른 숫자가 된다.

이 숫자들은 야구를 설명하는 척했지만, 야구의 일부만 비추는 거울이었다. 그리고 서로 다른 포지션의 선수를 같은 저울에 올릴 방법이 없었다. 투수의 다승과 타자의 타율을 어떻게 비교하는가.

30.3 파괴

세이버메트릭스는 이 좌표계를 부수고 전제를 하나 세웠다. 야구는 승리를 위한 게임이고, 승리는 득점에서 온다.

그리고 야구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를 득점 기여도라는 단일 축 위에 올렸다. 안타도, 볼넷도, 도루도, 수비도, 병살타 유도도 — 전부 “이것이 팀 승리에 몇 점만큼 기여했는가”로 환산된다.

그 결정체가 WAR다. Win Above Replacement. 해당 포지션의 대체선수 대비 몇 승을 더 팀에 가져다 주었는가. 숫자 하나.

30.4 압축의 구조

WAR의 아름다움은 출력의 단순함에 있다. 투수든 타자든 유격수든, 2023년의 선수든 1970년의 선수든, 하나의 숫자로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숫자 뒤에는 거대한 계산이 있다. 타격 기여도는 볼넷·1루타·2루타·3루타·홈런 각각에 매년 회귀분석으로 추정한 득점 가중치를 곱해서 구한다. 수비 기여도는 야구장을 78개 구역으로 나누고, 각 구역에 떨어진 공의 아웃 확률과 득점 가치를 계산한다. 주루, 포지션 보정, 구장 효과, 리그 보정 — 이 모든 것이 합산되어 숫자 하나가 된다.

출력은 단순하지만 내부는 극도로 복잡하다. 복잡한 세계를 단순한 눈금으로 읽겠다는 의지, 이것이 좌표계 설계의 구조다.

30.5 오타니 쇼헤이

그리고 이 좌표계를 시험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2021년. 오타니 쇼헤이는 투수로 130이닝을 던지며 삼진 156개를 잡고, 동시에 타자로 46홈런을 쳤다. WAR 9.0. 만장일치 MVP.

2023년. 투수로 23경기 등판, 타자로 44홈런. WAR 10.0.

WAR는 서로 다른 포지션의 선수를 하나의 숫자로 비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오타니는 두 포지션을 동시에 산다. 투수 WAR와 타자 WAR가 한 사람 안에서 합산되는 것도, WAR의 틀 안에서는 가능하다. 문제는 합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합산이 하나의 숫자로 압축되는 순간 사라지는 정보다.

숫자는 나온다. 그러나 그 숫자가 이 남자의 밀도를 포착하는가? 예를 들어 선발투수 5WAR와 타자 5WAR를 각각 보유한 팀과, 오타니 10WAR 한 명을 보유한 팀은 표에서 둘 다 10WAR다. 총량은 같다고 찍히지만 현실은 다르다. 후자는 로스터 한 칸이 비고, 그 한 칸으로 불펜이나 수비 유틸리티를 보강해 운영의 선택지를 늘릴 수 있다. 같은 10이라도 팀이 얻는 구조는 같지 않다.

WAR는 성과의 총량을 측정한다. 다만 역할 결합이 만드는 레버리지까지 완전히 포착하지는 못한다. 몇 승을 만들었는지는 보여주지만, 어떻게 그 승을 만들었고 그 구조가 어떤 추가 선택지를 낳는지는 따로 읽어야 한다. 측정은 된다. 포착은 다른 문제다.

30.6 좌표계의 균열

WAR에는 균열이 있다.

구하는 방법이 통일되어 있지 않아서 fWAR(Fangraphs)와 bWAR(Baseball-Reference)는 같은 선수에게 다른 숫자를 부여하고, 같은 좌표계를 표방하면서 눈금이 다르다.

수비 지표는 연간 편차가 크고, 기록원의 주관이 개입하며, 포수의 수비 능력은 아직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

그리고 WAR는 맥락을 지운다. 9회말 동점 상황의 홈런과 10점 차 경기의 홈런이 같은 가치로 합산된다. WPA(승리 확률 기여도)나 클러치 지표는 이 장면의 무게를 재려고 시도하지만, WAR는 설계상 그것을 버린다. 하나의 숫자로 압축하는 대가로, 장면의 무게가 사라진다.

이것은 결함이 아니라 좌표계의 본질이다. 모든 좌표계는 세계를 읽기 위해 세계의 일부를 지운다.

30.7 맺음

타율·다승·방어율이라는 낡은 좌표계를 부수고, 득점 기여도라는 단일 축 위에 야구의 모든 행위를 올린 것. 그것이 WAR가 남긴 혁명이다.

WAR는 총량을 안정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총량을 압축하는 순간 구조를 지운다. 역할 결합이 만드는 레버리지, 경기 장면의 무게, 운영의 선택지는 숫자 바깥에서 다시 읽어야 한다.

좋은 좌표계는 세계를 전부 말하는 체계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웠는지 스스로 밝히는 체계다.

30.8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