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신센구미: 마지막 제복

“설령 이 몸이 에조의 섬에서 썩더라도, 혼은 동쪽의 군주를 지키리라.” — 히지카타 토시조, 辞世の句 (1869)


33.1 농민의 아들들

곤도 이사미는 다마 지방 농가의 아들이었고, 히지카타 토시조는 가업이 약 장사였다. 에도 시대의 신분제에서 이들은 사무라이가 아니었고, 사무라이가 될 수도 없었다. 검술 도장에 들어간 것은 입신의 경로가 아니라 거의 취미에 가까운 선택이었는데, 그 도장 하나가 궤도를 바꿨다.

텐넨리신류(天然理心流). 화려하지 않고 실전적인 유파였다. 곤도는 도장주의 양자로 들어갔고, 히지카타는 약을 팔면서 검을 잡았고, 열 살도 안 된 오키타 소지가 들어와서는 형들을 이기기 시작했다. 이 도장 출신들이 1863년에 교토로 올라가 신센구미를 만들었을 때, 교토의 사무라이들은 콧방귀를 꼈다. 시골 농민 출신이 무슨 칼이냐.

4년 뒤, 교토에서 신센구미보다 무서운 이름은 없었다.

33.2 이케다야, 그리고 규율

1864년 6월, 이케다야 습격. 조슈 번 지사들이 교토에 불을 지르려는 모의를 하고 있었고, 신센구미가 여관으로 들이닥쳤다. 곤도 이사미가 네 명만 데리고 먼저 돌입해서 수십 명을 상대로 싸웠고, 이겼다. 이 사건 하나로 신센구미는 막부의 칼이 되었는데, 밖에서 보이는 무서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안의 규율이었다.

히지카타가 세운 국중법도(局中法度)는 간결하고 잔인했다 — 탈영하면 죽고, 사사로이 돈을 모으면 죽고, 대의를 저버리면 죽는다. 이 규율을 처음으로 적용받은 것은 적이 아니라 초대 국장 세리자와 카모였다. 행실이 난폭하다는 이유로 곤도와 히지카타가 직접 숙청했다. 바깥의 적에게 칼을 휘두르기 전에 안의 흐트러짐을 먼저 벤 것이다.

밀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농민의 아들들이 실력 하나로 교토의 치안을 쥐었고, 내부 기강을 스스로의 피로 세웠고, 칼 한 자루가 품을 수 있는 밀도의 거의 상한선까지 갔다.

33.3 부수지 않은 사람들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신센구미가 증명한 것은 신분이 실력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농민도 사무라이를 이기고, 약장수도 조직을 세우고, 혈통이 아니라 검과 규율이 사람의 자리를 정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줬다. 메이지유신이 내건 기치도 이 방향이었다 — 사민평등, 신분 해체, 실력의 세계.

논리대로라면 신센구미야말로 새 시대의 편에 서야 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들은 낡은 신분제의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막부 복무를 통해 그 질서 안에 편입되려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농민 출신이 사무라이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사다리가 막부였고, 그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은 자기가 올라선 발판을 부수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끝까지 막부 편에 섰다. 자기를 올려준 질서가 낡았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질서만이 자기를 인정해줬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파괴의 공리가 작동하지 않았다. 낡은 것을 부수고 새것을 짓는 순서에서 첫 번째 단계를 거부한 것이다. 밀도는 충분했고 실력도 있었지만, 그 밀도와 실력 전부를 파괴가 아니라 보존에 걸었다.

같은 시대를 산 후쿠자와 유키치가 파괴와 창조를 이행한 뒤 확장에서 꺾였다면, 신센구미는 파괴 자체를 거부하고 보존하려던 것과 함께 무너졌다. 같은 바쿠마츠의 거울상이다.

33.4 하코다테

1868년, 보신전쟁. 막부가 항복했다.

곤도 이사미는 투항했다가 참수되었고, 오키타 소지는 전쟁을 보지도 못한 채 결핵으로 죽었다. 대부분의 대원이 전사하거나 흩어졌다.

히지카타 토시조만 멈추지 못했다. 에도에서 아이즈로, 아이즈에서 센다이로, 센다이에서 바다를 건너 홋카이도로. 지킬 것이 사라진 뒤에도 칼을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건 충의라기보다 관성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하코다테의 고료카쿠에서 마지막 전투를 벌이다 1869년 5월, 총탄에 맞아 전사. 서른넷.

약을 팔던 농민의 아들이 일본 최후의 내전 마지막 총성 근처에서 죽은 것인데, 이 장면이 150년째 재생된다. NHK 대하드라마 「신센구미!」(2004), 오토메 게임 「하쿠오키」(薄桜鬼), 「은혼」의 신센구미 패러디, 「바람의 검심」의 사이토 하지메 — 매체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같은 소재가 반복 소비되는 것은 일본 서브컬처에서도 이례적이다. 히지카타의 사진 한 장 — 양복을 입고 칼을 찬 채 정면을 응시하는 — 이 지금도 팬아트의 원본이고, 하코다테 고료카쿠에는 해마다 순례객이 온다.

33.5 왜 낭만인가

여기서부터가 본론이다.

신센구미가 역사적으로 옳았느냐는 답이 나와 있다. 막부 체제는 유지될 수 없었고, 신센구미는 역사의 흐름을 읽지 못한 — 혹은 읽고도 거부한 — 집단이었다. 구시대적이라는 비판은 정당하다.

그런데 정당한 비판이 150년간 이 집단의 낭만을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밀도가 답의 일부다. 농민의 아들이 검 하나로 시대의 한복판에 섰다가 5년 만에 전멸한 궤적은, 그것이 향하는 곳이 과거든 미래든, 압축 자체가 강렬하다. 소멸 직전에 형식이 내뿜는 마지막 압축이라는 것이 있는데, 신센구미의 5년이 정확히 그것이다. 사무라이 계급 전체가 수백 년에 걸쳐 희석한 충의와 규율을, 사무라이도 아닌 자들이 5년에 응축해서 보여줬으니, 사후에 문화적 곡률이 생긴 것은 역사적 정당성과 별개로 구조적으로 설명이 된다. 밀도가 높으면 방향과 무관하게 주변이 휜다.

그런데 이 낭만에는 독이 있다. “아름답게 지는 것”이 숭고한 서사가 되면, 사람들은 죽어가는 시스템에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된다. 일본이 신센구미를 150년째 소비하는 구조를 시스템세로 읽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 충성과 희생을 미학으로 감싸서 시스템 복무를 자발적으로 만드는 마취. 일본에는 이 감각의 계보가 있다. 주군을 위해 할복한 47인의 충신장(忠臣蔵)이 수백 년째 국민 서사로 재생산되고, 야스쿠니에는 패배한 전사를 신으로 모시는 구조가 제도화되어 있다. 신센구미의 낭만은 이 흐름 위에 놓여 있고, 이 감각의 일부가 메이지 이후 군국주의의 동원 서사로 재활용되었다.

이 두 면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밀도가 진짜이기 때문에 낭만이 작동하고, 낭만이 작동하기 때문에 시스템이 그것을 세금으로 징수할 수 있다.

33.6 한계

밀도가 진짜라는 말이 방향도 괜찮았다는 뜻은 아니다. 세 개의 손실함수가 말하듯 아름다움과 옳음은 같은 축이 아니며, 신센구미는 아름다웠지만 틀렸다. 그리고 밀도가 남긴 문화적 곡률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는지는, 그 낭만을 군국주의가 어떻게 재활용했는지를 보면 답이 쉽지 않다.

33.7 맺음

농민의 아들들이 검을 잡았고, 시대의 한복판에서 5년을 태웠고, 전멸했다. 지켜야 할 것이라고 믿은 질서는 이미 끝나 있었고, 그 질서를 지키는 데 쓴 밀도는 진짜였다.

파괴의 공리는 낡은 것을 부수라고 말한다. 신센구미는 부수지 않았고, 부수지 않은 것과 함께 묻혔다.

33.8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