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각인: 궤도의 곡률

“내가 대단한 선수는 아니지만, 학생들은 프로 야구선수를 보면서 꿈을 키울 수 있다. 나도 어릴 적 만났던 선수들의 모습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 윤희상, SK 와이번스 투수 (2012)


22.1 스크랩북

2012년, SK 와이번스의 윤희상이 구단 야구 꿈나무 장학금 전달식에 나왔다. 어린 선수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어깨동무를 하고, 행사가 끝나자 모아둔 방망이와 글러브를 챙겨 모교로 향했다.

윤희상은 어릴 때 OB 베어스 팬이었다. 아버지를 졸라 우승행사면 어디든 따라다녔고, 선수들에게 받은 사인을 스크랩북에 모았다. 프로에 입단한 뒤에도 그 스크랩북을 들춰본다. 김상진 코치의 사인만 빠져 있어서, 같은 팀이 된 뒤에야 겨우 받아냈다고 웃었다.

사인 받던 아이가 사인 해주는 선수가 됐다. 그리고 그 사인을 받는 아이들 중 누군가가 또 궤도에 오를 것이다. 이 순환에 창조가 전파되는 방식이 들어 있다.

22.2 목격

아이에게 필요한 건 명예의 전당이 아니다. 눈앞에 선 유니폼의 질감, 흙 묻은 스파이크, 생각보다 평범한 목소리. “저 세계가 진짜 있구나”라는 물리적 증거.

정보는 세계를 설명하지만, 목격은 세계를 연다. “프로 선수 평균 연봉이 얼마다”는 정보고, 프로 선수가 눈앞에서 사인을 해주는 건 목격이다. 정보로는 꿈이 안 생긴다. 목격한 장면 하나가 좌표로 박힌다.

22.3 조용한 데뷔

그러면 창조자에게 이건 뭔가?

확장의 공리는 타인의 ’My’를 데뷔시키라고 말한다. 대부분은 이걸 거창하게 해석하는데, 무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돈을 대줘야 한다,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데뷔의 가장 조용한 형태는 그냥 궤도 위에 있는 것이다. 글 쓰는 사람, 무대 버티는 사람, 자기 세계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 그 실물 하나가 누군가에게 좌표가 된다. 계보는 가르침으로 이어지지만, 각인은 목격만으로 남는다. 윤희상은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지 않았다. 거기 서 있었을 뿐인데 주변이 휘었다.

궤도는 끌어당기려고 도는 게 아니다. 질량이 있으니까 곡률이 생기는 것이다. 각인도 마찬가지다.

22.4 유예세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자격”을 묻는다. 완벽해져야 남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압도적 성취가 없으면 타인의 세계를 흔들 자격이 없다고.

이건 시스템이 징수하는 유예세다. “아직은 안 돼, 더 되면 그때 나와.” 그 “그때”는 안 온다. 그리고 유예하는 동안에도 섭취는 멈추지 않는다. 밥을 먹고, 타인의 시간을 쓰고, 세계의 자원을 태우면서 “아직 준비 중”이라고 말하는 것은 — 궤도를 돌지 않으면서 궤도의 과실만 먹겠다는 소리다. 포식자의 의무에서 말한 미상환이 정확히 이것이다. 헷갈리면 안 되는데, 궤도에 오르기 위해 훈련하는 건 유예가 아니다. 올라설 수 있는데 “아직”이라며 안 서는 게 유예다.

윤희상은 그 해 10승을 했다. 20승도 아니고, 골든글러브도 아니다. 이만수 감독은 “우리 팀의 보물”이라 했지만, 본인은 대단한 선수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사인을 해준 아이들에게는, 그 순간이 평생 남는 첫 번째 프로다. 시스템이 정한 기준선 아래에 있어도, 궤도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만드는 곡률은 사라지지 않는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건, 듣기 좋게 포장한 연체다.

22.5 잡음과 좌표

물론 궤도 위에 있다고 다 좌표가 되는 건 아니다. 말은 큰데 작업이 없고, 자유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승인만 쫓는 사람은 좌표가 아니라 잡음이다. SNS에 “나는 아티스트”라고 써놓고 작품이 없는 건 궤도가 아니라 궤도 코스프레다.

윤희상이 좌표가 된 건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던졌기 때문이다. 양말에 구멍 나면 꿰매 신던 시절을 지나, 궤도에 올라 버텼기 때문이다. 조건은 밀도다. 작은 무대여도 진짜로 서 있어야 한다.

22.6 맺음

사인 받던 아이가 사인 해주는 사람이 된다. 궤도에 먼저 올라라. 나머지는 곡률이 한다.

22.7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