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돈이 덜 필요한 자

— My의 결손은 비용으로 청구된다


52.1 약속이 아니라 회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돈이 덜 필요해진다.”

이 두 문장 중에서 사람이 멈추는 곳은 두 번째다. 보통 듣던 말과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자기계발 담론은 보통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돈도 따라온다”고 약속한다. 따라오지 않으면 열정이 부족했거나 전략이 부족했다고 한다. 약속이 깨지지 않도록 설계된 화법이다.

이 글은 그 약속을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돈이 더 들어온다는 보장은 없다.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 안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 들어오는 경로도 사람마다 다르다. 약속할 수 있는 건 그쪽이 아니다.

살펴볼 만한 자리는 다른 쪽에 있다 — 나답게 살수록 돈이 덜 필요해지는 쪽으로 기운다. 이쪽은 약속이 아니라 회계다.


52.2 같은 만 원의 가격이 다르다

부자·면세인·징세인이 면세를 정의했고, 면세인의 소비가 면세인이 어디에 깊게 쓰는지를 보여줬고, 죽음이 평생의 시스템세를 정산서로 풀었다. 이 글은 그 사이의 자리, 곧 같은 한 사람의 비용함수가 왜 어떤 시점엔 작아지고 어떤 시점엔 커지는지를 본다.

같은 만 원도 어떤 자리에서 쓰면 가볍고 어떤 자리에서 쓰면 무겁다. 가벼운 자리는 보통 두 종류다 — 정말 필요해서 쓰는 자리와, 정말 좋아서 쓰는 자리. 무거운 자리는 한 종류다 — 안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쓰는 자리. 이 세 번째 자리의 총량이 그 사람의 진짜 생활비다.

정리하면 첫째 자리는 필요의 비용, 둘째 자리는 취향의 비용, 셋째 자리는 보상의 비용이다. 첫째와 둘째는 본인이 결제 승인을 한다. 셋째는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연봉이 같은 두 사람의 잔고가 다른 이유는 보통 여기서 갈린다. 한 사람은 첫째와 둘째 자리만 쓰고, 다른 사람은 셋째 자리에 끊임없이 결제한다. 셋째 자리의 청구서는 K-매트릭스가 보낸다. 자동 결제로 빠져나가니까 명세서를 잘 안 본다.


52.3 My가 없으면 보상으로 메워야 한다

셋째 자리가 커지는 건 대개 My가 비어 있을 때다. 자기 자리에 못 사는 사람은 그 결손을 어디선가 메워야 하는데, 메우는 통화는 대개 두 가지다 — 돈과 사랑. 돈으로 위안을 사고, 사랑으로 자존을 빌린다. 두 통화가 빠져나가는 양만큼 비용함수가 부풀어 오른다.

하루에 자기 자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을수록, 그 결손을 메우는 비용이 늘어나는 쪽으로 기운다. 일이 자기 것이 아니면 일이 끝난 뒤에 보상이 필요하다. 외식이 비싸지고, 옷이 비싸지고, 휴가가 비싸지고, 차가 비싸진다. 회식 후 새벽에 시키는 배달 음식의 가격은 음식 가격이 아니라 그날 못 산 자기 자리의 가격이다.

문제는 외식이나 휴가나 차가 아니다. 같은 외식이 누군가에겐 둘째 자리(취향)이고 누군가에겐 셋째 자리(보상)다. 가격표는 같은데 자리가 다르다. 자기 안에서 그게 어느 자리에 떨어지는지를 본인이 알아야 한다.

같은 일을 자기 것으로 하는 사람은 같은 정도의 보상이 필요하지 않다. 비싼 휴가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휴가의 자리가 달라진다. 회복할 게 적으니까 회복 비용도 작다.

이건 절약과 다르다. 절약은 의지로 지출을 누르는 일이지만, 이쪽은 누를 지출이 애초에 작게 발생한다.


52.4 사랑받기 위한 노동

돈으로 메우다가 한계가 오면, 사람은 사랑으로 옮겨간다. 여기서 사랑은 연인이나 가족의 사랑이 아니라 더 넓은 통화다 — 인정, 관심, 좋아요, 칭찬, 평판, “그 사람 괜찮더라”는 한 줄까지 다 포함한다. 공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비싼 통화다. 받으려면 받을 만한 모습으로 자기를 계속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이 한 번 더 꼬인다. 사랑받기 위한 다듬음은 자기 자리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남들이 사랑해주는 모습은 보통 평균에 가깝거나 시대 유행에 맞는 모습이고, 자기 자리는 보통 그쪽에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랑을 더 받을수록 자기 자리에서 더 멀어지고, 멀어진 만큼 다시 사랑이 더 필요해지는 회로가 만들어진다.

사랑받기 위한 노동은 결국 시스템세의 가장 비싼 항목이다. 돈은 액수라도 적혀 있지만, 사랑을 받기 위해 든 시간과 자세 변경은 가계부에 안 잡힌다. 그래서 본인도 자기가 얼마를 결제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시점에 K-매트릭스가 다룬 출구 비용은 더 이상 외부에서 청구되지 않고 안에서 발생한다. 사랑을 잃으면 자기가 무너지는 사람에게 출구는 추락으로만 보인다.

향수의 그르누이는 이 회로가 끝까지 간 자리다. My가 비어 있던 그르누이는 사랑(매혹) 통화 하나로 비용함수를 채우려 했고, 마지막 광장에서 군중이 이성을 잃을 정도의 사랑을 한꺼번에 받아냈다. 그런데도 결손이 채워지지 않았다. 사랑 통화는 받는 양으로 결손을 메우지 못한다. 그르누이는 그 사실을 마지막에 보고 자기를 먹이로 내놓는다. 회로의 종착역이다.


52.5 타인의 성공이 자기 잔고로 잡힐 때

같은 회로가 또 다른 출력을 만든다. 확장의 공리는 타인의 ’My’를 데뷔시키라고 했는데, 회로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게 잘 안 된다. My가 채워진 사람에게는 타인의 성공이 자기 좌표계와 무관한 사건이라 진심으로 축하가 나온다. My가 비어 있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성공이 자기 잔고에 마이너스로 잡힌다.

회로의 작동은 이렇다. 사랑 통화로 결손을 메우고 있는 사람에게는, 누가 사랑을 받으면 자기 몫이 줄어든 것처럼 인식된다. 사랑은 사실 제로섬이 아닌데 회로 안에서는 제로섬으로 잡힌다. 그래서 친구가 잘되면 배가 아프고, 동료가 상을 받으면 표정 관리가 안 되고, 후배가 부상하면 갑자기 후배의 단점이 잘 보인다. 도량의 문제가 아니라 회계의 문제다 — My 자리가 비어 있는 동안에는 타인의 사랑 수령이 자기 결손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다는 건 그래서 인격의 표지가 아니라 면세 상태의 표지에 가깝다. 자기 자리가 채워져 있어서 타인이 받는 사랑이 자기 잔고로 환산되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성공이 그냥 그 사람의 사건으로 보인다.

같은 회로가 산업 단위로 굴러가는 자리도 있다 — 인플루언서 경제다.


52.6 인플루언서가 면세를 못 거치는 회계

모든 사람은 국가다에서 인플루언서와 1인 국가의 분기 자리를 자세함으로 설명했다. 이 글이 그 자리의 회계를 만든다.

인플루언서의 매력은 사랑받기 위한 노동을 산업화한 형태다. 매력을 돈으로 갈아 넣는 동시에 그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의상, 시술, 장비, 촬영 공간, 보정, 스태프, 콘텐츠 단가까지 매력의 회전율이 빠를수록 유지비도 같이 올라간다. 들어오는 돈이 많아 보여도 셋째 자리의 결제도 같이 커지니, 생각보다 남지 않는다.

징세를 하려면 면세를 먼저 거쳐야 한다고 부자·면세인·징세인이 말했다. 그 명제의 회계적 의미가 여기서 분명해진다. 면세를 안 거친 매력은 사랑받기 위한 노동에 묶여 있고, 그 노동은 셋째 자리의 결제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매력의 출처가 자기 자리가 아니라 시청자 반응이라서, 시청자가 빠지면 매력의 증거도 같이 빠진다. 그래서 못 빠지게 막아야 하고, 막는 비용이 다시 셋째 자리에 청구되면서 회로가 자기를 먹기 시작한다.

1인 국가의 매력은 자기 자리에서 발생한다. 시청자가 빠져도 매력 자체가 빠지지 않으니까, 매력 유지를 위한 결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같은 매력이라도 한쪽은 비용을 발생시키고 한쪽은 비용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이 회계의 차이가 면세선이다.


52.7 면세인은 가난한 게 아니다

여기서 면세인의 정의가 한 줄 더 정확해진다.

면세인은 돈이 없는 자도, 돈을 거부하는 자도, 돈이 많은 자도 아니다. 셋째 자리의 결제가 거의 없는 자다. 같은 소득에서 잔고가 더 남고, 그 잔고로 살 수 있는 시간이 더 길고, 그 시간에 자기 자리를 더 두껍게 채울 수 있다.

이 정의는 두 가지 오해를 동시에 막는다. 면세인을 청빈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 첫째 자리(필요)와 둘째 자리(취향)에는 면세인의 소비가 보여준 대로 오히려 깊게 쓴다. 면세인을 부자로 오해하면 안 된다 — 부자는 셋째 자리의 결제가 가장 큰 사람이다.

면세인을 알아보는 가장 빠른 방법도 여기서 나온다. 그 사람이 무엇을 안 사는지를 본다. 안 사는 항목이 셋째 자리에 모여 있으면 면세인이고, 둘째 자리까지 비어 있으면 그냥 결핍이다.


52.8 신호는 통장이 아니라 명세서다

이 글의 명제는 회계 보고에 가깝다. 자기 자리에서 사는 만큼 비용함수가 작아지는 쪽으로 기우는데, 그 기울기는 본인이 매달 명세서로 직접 가늠할 수 있다. 안 줄어들면 아직 자기 자리가 아닐 가능성이 있고, 줄어들기 시작했으면 자기 자리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로 읽을 만하다. 외부 평가보다 먼저 볼 수 있는 자리가 여기다.

신호를 보는 자리도 통장이 아니다. 잔고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자기 자리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고, 잔고가 늘어난다고 자기 자리에 가까워졌다고 볼 수도 없다. 셋째 자리의 결제가 줄어드는지를 봐야 한다. 통장은 천천히 따라온다.


52.9 한계

첫째, 이 글은 비용함수가 줄어드는 자리를 그렸지만, 줄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자기 자리에서 살면서도 셋째 자리의 결제가 큰 사람이 있다 — 가족 부양, 의료비, 빚 상환처럼 본인 의지로 줄일 수 없는 항목이 큰 경우다. 이 경우엔 명제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비용함수의 일부만 줄어든다.

둘째, “돈이 덜 필요해진다”는 명제가 “돈이 적어도 된다”로 미끄러지면 위험하다. 면세인의 셋째 자리가 작아도 첫째와 둘째 자리는 그대로 있다. 의료, 주거, 교육 같은 첫째 자리의 비용은 사회의 가격표가 정한다. 자기 자리에 산다고 그게 자동으로 줄지 않는다.

셋째, 셋째 자리의 결제가 0인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인간은 어느 정도는 보상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는 사랑이 필요하다. 0을 목표로 하면 그 자체가 또 다른 자기 압박이 된다. 줄이는 게 목표지 0이 목표가 아니다.


52.10 맺음

같은 사람이 같은 일을 해도 자기 자리에 있을 때와 아닐 때의 생활비가 다르다. 의지의 차이가 아니라 회로의 차이다. 자기 자리가 비어 있으면 그 결손을 메우는 결제가 매일 일어나고, 채워져 있으면 그 결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돈이 덜 필요해진다.”

면세인은 돈을 거부한 자가 아니라, 자기 자리에 살아서 돈으로 메울 게 적어진 자다.


52.11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