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아스달 연대기: 서사는 사실일 필요가 없다
65.1 왕처럼 보이는 게 전부야
아스달 연대기(tvN, 2019)는 거대한 제작비와 화제성에 비해 흥행은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런데 망한 드라마에도 남는 문장이 있다.
타곤이 말한다. “왕은 왕처럼 보이는 게 전부야.”
이 문장은 대사가 아니라 공리다. 아스달 연대기는 제정일치 국가가 세워지는 과정을 그리는데, 세 명의 주인공이 각각 다른 경로로 같은 진실에 도달한다. 권력은 사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승인 가능한 형식으로 조립될 때 나온다.
그리고 셋의 서사는 어느 것도 진위를 검증할 수 없다.
65.2 타곤 — 서사를 짓다
타곤은 아라문 해슬라의 빙의를 연기한다. 신화적 영웅의 재림. 사기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사기와 정치의 경계는 군중이 믿는 순간 사라진다.
빙의는 거짓이다. 그러나 빙의를 본 군중의 경험은 진짜다. 타곤이 생산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시각적 질서다 — 누가 신화의 중심에 서 있는가, 누가 말할 때 주변이 침묵하는가. 이 질서가 먼저 만들어지고, 제도는 그 뒤를 따라온다.
타곤은 서사를 날조했다. 그리고 날조된 서사 위에 왕좌를 세웠다.
65.3 은섬 — 서사가 되다
은섬이 이나이신기로 인정받는 과정은 더 흥미롭다. 예언이 적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에 몰린 은섬을 살리기 위해, 친구가 뻥을 친다. “이 사람이 재림 이나이신기다.” 거짓 선언이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폭포시험을 통과한다. 여기까지는 운이다.
결정적 전환은 그 다음이다. 사람들이 은섬을 믿고 싶어한다. 반대하는 족장이 있으면, 은섬의 예언이 실현되도록 그 족장을 제거하는 쪽을 택한다. 드라마는 이 과정을 예언의 적중이 아니라 집단의 선택으로 그린다 — 사람들이 미래를 예언 쪽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자기실현적 예언. 서사의 출발점은 친구의 뻥이었지만, 공동체가 그 뻥을 현실로 만들어주기로 결정한 순간, 거짓은 역사가 된다. 아라문의 검을 꺼내는 장면도 같은 구조다. 검은 무기가 아니라 승인 토큰이다. 내면의 진정성이 아니라, 체계를 통과시킬 수 있는 상징.
타곤은 서사를 혼자 지었다. 은섬의 서사는 집단이 지어주었다.
65.4 탄야 — 서사를 춤추다
탄야의 정령의 춤은 판타지 장식이 아니다.
좁은 발걸음과 넓은 발걸음 사이의 엄격한 균형. 같은 동작의 반복. 어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지는 전승. 해미홀과 아사론은 탄야가 걸려들었다고 생각했지만, 탄야는 꺼지지 않는 불 앞에서 와한족에게 배운 정령의 춤을 춘다. 함께 춤추던 새가 벽에 머리를 박고 죽고, 그 자리에 균열이 생긴다. 탄야는 이전부터 익혀둔 돌 던지기로 균열 속에서 별 방울을 찾아낸다.
별 방울은 대사제의 자격 증명이다. 춤이 신의 뜻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 — 별 방울의 발견 — 는 공동체가 읽을 수 있는 형식이었다. 탄야는 아사신이 된다. 무력으로만 세운 권력은 쿠데타로 보이기 쉽지만, 의례를 통과한 권력은 운명으로 보인다.
타곤은 서사를 지었고, 은섬은 서사가 되었고, 탄야는 서사를 춤췄다.
65.5 검증 없는 서사, 세 개의 왕좌
셋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어느 서사도 드라마 안에서 공적으로 검증된 적이 없다.
타곤의 빙의는 연기다. 은섬의 이나이신기 선언은 친구의 즉흥이다. 탄야의 정령의 춤이 신의 뜻을 전달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셋 다 왕좌에 닿았다.
제정일치 국가에서 칼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은 이야기다. 무력은 서사가 만든 질서를 집행할 뿐이고, 제도는 서사가 굳어진 형태일 뿐이다. 진위 여부는 권력의 성립 조건이 아니다. 서사가 승인 가능한 형식을 갖추었는가, 그리고 그 형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집단이 있는가 — 이 두 조건이 맞물릴 때 검증되지 않은 서사가 역사가 된다.
65.6 맺음
아스달 연대기를 실패한 드라마로만 두면 한 가지를 놓친다. 새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왕을 바꾼다는 뜻이 아니다. 승인의 문법을 바꾼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