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기축통화
— 남이 너의 단위로 생각하기 시작할 때
58.1 발행
모든 인간은 무언가를 발행한다. 말, 질문, 기준, 형식, 좌표계. 회의에서 던진 비유 하나, 친구에게 건넨 판단 하나, 글 한 편, 무대 한 번. 전부 발행이다.
대부분의 발행물은 자기 주변에서 잠깐 돌다가 사라진다. 누가 썼는지 기억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꿔 끼워도 아무 차이가 없다. 발행한다는 사실 자체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58.2 작품과 단위
여기서 한 겹을 벗겨야 한다. 작품을 만드는 것과 단위를 발행하는 것은 다르다.
바흐의 음반을 사서 듣는 것은 소비다. 바흐의 평균율이라는 좌표계 위에서 자기 곡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틀렸다고 밝혀진 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무의식, 억압, 전이라는 단어로 자기를 설명한다. 이론은 기각되었지만 단위는 살아남았다. 뉴턴의 역학도 마찬가지다. 물리학이 상대론으로 넘어간 뒤에도 일상의 사고는 여전히 뉴턴의 좌표계 안에서 돌아간다.
기축통화가 된다는 것은 남이 네 작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네 단위로 자기 세계를 계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세계관이 언어가 될 때가 관찰한 것도, 각인: 궤도의 곡률이 말한 곡률도 같은 장면이다. 조직의 어휘가 후기에 자발적으로 등장하고, 그 어휘를 디딤돌 삼아 자기 문장을 쓰기 시작할 때 — 단위가 통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질량이 있으니까 주변이 휘는 것이지, 끌어당기려고 도는 것이 아니다.
부자, 면세인, 그리고 징세인이 말한 징세도 여기서 비로소 설명된다. 징세는 돈을 걷는 행위가 아니라, 네 단위가 이미 통용된 뒤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이다. 단위가 없는 사람이 징세하려 하면 그건 착취다.
58.3 기축의 조건
기축통화는 선언으로 되지 않는다. 채택으로 된다.
달러가 기축인 것은 미국이 선포해서가 아니라, 세계가 달러로 거래하기로 한 것이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진 뒤에도 달러가 기축으로 남은 이유는 군사력만이 아니다. 다른 단위로 전환하는 비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모두가 달러로 계산하고 있으므로, 달러에서 빠져나가려면 자기 거래 체계 전체를 다시 짜야 한다.
정신의 기축도 같은 구조다. 누군가의 단위가 기축이 되면, 그 단위로 이미 사고하고 있는 사람들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빠져나오려면 자기 좌표계를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축의 힘이고, 동시에 위험이다.
밀도가 임계점을 넘으면 단위가 통용되기 시작한다. 그 임계점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전에 계산할 수 없다. 다만 사후에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 남이 네 언어로 자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는가.
58.4 인플레이션과 위조
기축은 유지비가 있다.
자기 반복은 인플레이션이다. 같은 단위를 계속 찍어내면 한 장의 가치가 떨어진다. 한때 기축이었던 아티스트가 자기 공식을 반복하기 시작하면, 그의 단위로 사고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다른 좌표계를 찾아 떠난다. 발행량이 밀도를 앞지르는 순간 인플레이션이 시작된다.
아류는 위조지폐에 가깝다. 단위의 표면을 복제하지만 발행 근거가 없다. 진짜 화폐는 발행자의 밀도로 뒷받침되고, 복제된 단위는 아무것에도 뒷받침되지 않는다. 복제품이 많아지면 원본의 단위마저 가벼워질 수 있다 — 같은 단어를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면, 그 단어 자체가 가벼워진다.
58.5 태환
기축통화에는 태환이라는 조건이 있다.
브레튼우즈에서 달러는 금과 태환 가능했다. 달러를 가져오면 금으로 바꿔준다는 약속. 닉슨이 1971년 그 태환을 정지한 순간, 달러는 금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체제의 신뢰만으로 버티는 화폐가 되었다.
정신의 기축에서 태환은 이것이다 — 말이 작품으로, 밀도로, 실제의 아름다움으로 상환될 수 있는가. 거대한 선언을 했는데 그 선언을 뒷받침하는 작품이 없다면, 그것은 태환 불능 상태다. 지폐만 찍고 금고는 비어 있는 나라.
빈말이 유통되는 시간은 짧다. 처음에는 선언의 힘으로 돌아가지만, 상환 요구가 들어오는 순간 무너진다. “그래서 뭘 만들었는데?”라는 질문이 태환 요구다. 답할 수 없으면 끝이다.
다만 기축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태환이 의심되기 시작해도, 이미 그 단위로 사고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환 비용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한다. 파운드가 달러에 기축을 내준 것도 하룻밤의 사건이 아니었다. 태환 능력이 약해지고, 대체할 단위가 출현하고, 전환 비용을 감내할 이유가 쌓인 뒤에야 비로소 무너졌다. 관성이 길기 때문에 붕괴는 느리게 오지만, 오면 되돌릴 수 없다.
아티스트의 기축도 같은 구조다. 단위는 아직 유통 중인데 밀도가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을 때, 한동안은 관성으로 버틴다. 그러나 누군가 다른 좌표계를 들고 나타나는 순간, 그 관성은 끝난다.
58.6 한계
첫째, 기축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되는 순간 구조가 뒤집힌다. 통용되기 위해 발행하면 그것은 이미 시스템의 언어에 맞추는 행위이고, 통속이다. 기축은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다.
둘째, 기축이 된 단위는 새로운 중앙이 되기 쉽다. 위상학적 종교개혁이 경고한 것이 정확히 이것이다 — 교황을 끊었더니 성경이 새 교황이 되었다. 누군가의 단위가 기축이 되면, 그 단위 안에서 사고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새로운 종속 상태에 들어간다. 기축의 발행자가 이를 경계하지 않으면, 해방의 도구가 감옥이 된다.
셋째, 이 글의 화폐 비유 자체가 한계를 가진다. 화폐는 교환을 위해 존재하지만, 정신의 단위는 교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바흐의 평균율을 “쓴다”는 것은 달러를 “쓴다”는 것과 같은 종류의 행위가 아니다. 비유는 구조를 보여주지만, 구조가 비유와 같다는 뜻은 아니다.
작품을 만드는 것과 단위를 발행하는 것은 다르다.
기축은 선언이 아니라 채택이다. 그리고 채택된 단위는 태환될 수 있어야 한다. 말이 밀도로 상환되지 않는 순간, 기축은 결국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