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신분제는 사라지고 계기판이 왔다
“평등해진 게 아니라, 비교 가능해진 것이다.”
84.1 돈의 계기판 다음에 오는 것
오랫동안 직업은 서로 다른 궤도처럼 보였다. 의사는 병원에, 변호사는 법정에, 운동선수는 경기장에 있었다. 그러나 그 궤도들은 이미 한 번 같은 곳에서 만났다. 돈이다. 연봉, 개원 수입, 사건 수임료, 광고 계약, 몸값, 부동산. 서로 다른 직업은 결국 돈이라는 하나의 계기판 위에서 비교됐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이동이 보인다. 유튜브 채널 ’유나으리’를 운영하는 전직 의대 교수 이동욱은, 앞으로 명문대 진학과 전문직 취업의 목적이 결국 매력적인 유튜버가 되는 것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예측이 문자 그대로 맞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돈으로 환산되던 직업의 권위가 이제 조회수, 팔로워, 매력, 서사라는 앞단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건 전문직의 몰락이 아니라, 매력과 서사가 자본의 입구로 올라오는 장면이다. 의사 면허도, 명문대 졸업장도, 메달도 더 이상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한 사람의 세계를 시작하게 해주는 재료가 된다. 유튜브는 출구가 아니라 징조다. 1인국가론이 멋진 선언이 아니라 시대의 압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징조.
84.2 신분제는 다른 궤도였다
우리가 어쩌다 모두 같은 계기판 위에 올라서게 됐는지는, 그 이전과 나란히 놓고 봐야 드러난다. 옛날의 불평등은 모양이 달랐다. 구한말 주자성리학 사회는 노골적인 위계였다. 양반과 상민, 남성과 여성, 적자와 서얼, 중앙과 지방이 처음부터 다른 칸에 놓였다. 존재의 대사슬이 말한 그대로, 사람은 태어난 자리에 평생 묶였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은 반란이었다.
그래서 그 시대의 해방은 한 방향으로 터졌다. 신분 밖에 평등한 원점을 발명하는 것이다.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문장으로 위계를 무너뜨렸고, 개신교는 영혼에는 신분표가 없다고 가르쳤다. 불평등한 세계 안에서 모두가 똑같이 설 수 있는 새 원점을 지어낸 것이다. 다른 궤도에 갇힌 사람에게 “너도 같은 칸에 설 수 있다”는 말은 그 자체로 폭발이었다.
84.3 평등은 너무 잘 성공했다
그 해방은 이겼다. 신분제는 무너졌고, 적어도 말로는 모두가 평등해졌다. 시험은 누구나 볼 수 있고, 회사는 누구나 지원하고, SNS는 누구나 열 수 있고, 대학은 누구나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누구나 같은 문 앞에 설 수 있게 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모두가 같은 계기판 위에 올라간 것이다. 점수, 학벌, 연봉, 팔로워, 조회수, 스펙, 집값. 다른 칸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한 칸으로 모이자, 비로소 한 줄로 줄세울 수 있게 됐다. 평등해진 게 아니라, 비교 가능해진 것이다.
위상학적 종교개혁은 해방 운동이 어떻게 새로운 쳇바퀴로 접히는지를 보여줬다. 교황을 끊은 자리에 성경·교리·교단의 더 비가시적인 루프가 자라났듯, 신분제를 끊은 자리에는 단일 계기판이라는 더 촘촘한 격자가 자라났다. 해독제가 새 불평등의 원료가 된 것이다.
84.4 같은 궤도라는 새 폭력
여기서 불평등의 모양이 정확히 뒤집힌다.
신분제는 사람을 다른 궤도에 가뒀고, 현대의 평등은 모두를 같은 궤도에 올려놓았다.
다른 궤도에는 적어도 같은 숫자로 환산되는 비교는 적었다. 양반과 상민은 같은 자로 재이지 않았고, 그래서 상민은 가난했어도 양반의 자로 매일 채점당하지는 않았다. 같은 궤도에는 도망갈 데가 없다. 모두가 같은 자 위에 있으니 1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로 정렬되고, 누구도 그 줄 밖으로 못 나간다. K-매트릭스가 단일 궤도의 사회라고 부른 것이 이것이고, 외부 계기판을 자기 심장박동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이 줄을 채운다.
오해하면 안 된다. 이건 평등이 나쁘다는 글이 아니다. 신분제로 돌아가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문제는 평등이 아니라, 평등이 단 하나의 계기판에 포획되는 순간이다. 그때 평등은 모두를 같은 부품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 단일 계기판은 어느 한쪽이 짓는 게 아니다. 모두를 똑같이 만들려는 쪽과 능력으로 줄세우려는 쪽이 함께, 같은 자를 깎는다.
84.5 진이 무료가 되면 미가 자본이 된다
이 전환을 미는 것은 AI다. 이동욱이 짚었듯 유튜브가 영상 요약 기능을 붙이자, 콘텐츠의 내용보다 만든 사람의 매력이 더 중요해졌다. 내용은 기계가 압축하고, 압축되지 않는 사람만 남는다.
악상의 시대와 대학은 미를 공짜로 가져간다가 말한 흐름이 여기서 한 번 더 확인된다. AI가 정돈된 것(진)을 가져가면, 돈으로 환산되던 자격증과 지식의 값이 먼저 떨어진다. 그 빈자리에, 돈으로는 잘 재지지 않던 매력과 서사가 자본의 앞단으로 호출된다.
이건 나쁜 소식만은 아니다. 직업의 권위가 돈으로만 번역되던 시대에서, 사람 자체의 매력과 서사와 세계관이 전면으로 올라오는 시대가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미가 자본의 앞단으로 호출된 것과 미가 풀려난 것은 다르다. 문제는 그것이 조회수라는 또 하나의 단일 계기판에 붙잡히느냐, 아니면 자기 좌표계로 굳어지느냐다. 전자는 인플루언서로 끝나고, 후자는 1인국가가 된다.
84.6 출구는 다른 궤도가 아니다
그 갈림을 모든 사람은 국가다가 인플루언서와 1인국가로 먼저 그어두었다. 인플루언서의 매력은 플랫폼 안에서 값이 매겨지고, 1인국가의 매력은 플랫폼 바깥에서도 사람의 보는 법을 바꾼다. 유튜브로 갈아탄 매력은 아직 남이 쥔 자 위에 있고, 자기 자를 세운 매력만 그 줄을 벗어난다.
진짜 출구는 다른 궤도가 아니라 자기 좌표계다. 1인국가는 “내가 남보다 위에 서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그건 여전히 같은 자 위에서 더 높은 눈금을 차지하겠다는 말일 뿐이다. 1인국가는 그 줄에서 내려와 자기 자를 직접 발행하겠다는 선언이다.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문장으로 수직의 위계를 눕혔다. 그러나 그 평등이 단일 궤도로 접힌 지금, 필요한 문장은 다른 것이다. 모든 사람은 국가다. 답은 모두를 같은 줄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기준을 갖게 하는 데 있다. 두 원점이 말했듯, 원점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을 때에만 단일 궤도는 막힌다.
84.7 한계
세 가지를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첫째, 이 글은 평등 비판이 아니다. 동학과 개신교의 평등은 진짜 해방이었고, 신분제의 다른 궤도로 돌아가는 것은 출구가 아니라 더 깊은 감옥이다. 적은 평등이 아니라 단일 계기판이다. 평등을 버리자는 게 아니라, 평등을 한 줄의 줄세우기에서 풀어내자는 것이다.
둘째, 매력과 서사가 자본의 앞단으로 올라왔다고 해방이 온 건 아니다. 옛 단일잣대가 돈이었다면, 이제 조회수와 팔로워가 그 자리를 물려받는다. 돈으로는 잘 재지지 않던 매력마저 조회수 하나로 환산되는 순간, 미는 풀려난 것이 아니라 자본의 새 단위로 호출된 것뿐이다. 잣대만 돈에서 조회수로 바뀌었지, 단일 궤도는 그대로다.
셋째, 자기 좌표계는 도피도 교리도 아니다. 자기 자를 발행하려면 그 자에 곡률이 있어야 한다. 곡률 없는 밀도가 말했듯 아무도 기울어오지 않는 자는 자가 아니라 혼잣말이다. 같은 궤도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빠지면 데뷔가 아니라 낙오다. 거꾸로, “모든 사람은 국가다”라는 이 문장이 따라야 할 깃발로 굳으면 위상학적 종교개혁이 경고한 대로 또 하나의 정통, 또 하나의 계기판이 된다. 도피한 자기 좌표계는 혼잣말이 되고, 교리가 된 자기 좌표계는 새 단일 궤도가 된다.
84.8 맺음
신분제는 사람을 다른 궤도에 가뒀고, 평등은 모두를 같은 궤도에 올려놓았다. 다음 해방은 더 좋은 칸으로 갈아타는 것이 아니라, 궤도에서 내려 자기 좌표계를 갖는 것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문장이 한 시대를 열었다면, 이제 그 자리에 다른 문장이 온다. 모든 사람은 국가다.
84.9 관련 문서
- 모든 사람은 국가다 — 같은 궤도 밖의 자기 좌표계
- 위상학적 종교개혁 — 해방이 새 쳇바퀴로 접히는 방식
- 존재의 대사슬 — 신분이 다른 궤도였던 시대
- K-매트릭스: 출구 비용의 사회 — 단일 궤도에서 못 내리는 이유
- 대학은 미를 공짜로 가져간다 — 평등한 척하는 계기판
- 아티스트에게 커리어란 없다 — 계기판 대신 자기 서사
- 두 원점 — 원점이 여럿이어야 단일 궤도가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