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필요 없음의 두 얼굴

“하나는 버려지는 것이고, 하나는 비워주는 것이다.”


66.1 필요한 사람이 되려는 게임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라 — 자기계발이 파는 이 약속은 가장 정교한 덫이다. 세상은 필요 없어진 사람을 버리고 내리막은 누구도 비껴가지 않으니, 누구나 끝까지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 대체 불가능한 기술을 쥐고, 없으면 안 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가 빠지면 조직이 흔들리는 사람이 되려 한다.

그런데 이건 처음부터 지는 게임이다. 아무리 대체 불가능해 보여도 시대는 결국 그 자리를 우회하는 길을 찾고, K-매트릭스의 궤도는 낡은 부품을 갈아 끼운다. 필요로 버티려는 한, 필요 없어지는 날이 곧 끝나는 날이 된다.

66.2 창조자는 반대로 간다

창조자는 그 공포를 정면으로 받아 방향을 뒤집는다. 필요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애쓰는 대신, 내가 없어도 되는 세계를 자기 손으로 짓는 것이다. 자기 자리에 자기를 묶어두지 않고, 자기가 만든 변화가 세계에 충분히 박혀서 그 세계가 더 이상 자기를 찾지 않게 될 때까지 쏟아붓는다.

그래서 창조자에게 “내가 필요 없어졌다”는 패배의 신호가 아니라 완성의 신호다. 내가 바꾼 세상이 나 없이도 돌아간다는 것은, 그 변화가 진짜였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66.3 폐기와 확장

여기서 두 개의 “필요 없음”이 갈린다. 둘은 겉으로 똑같아 보인다 — 시스템이 버린 사람도, 스스로 비워준 사람도, 결과만 보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방향이 정반대다.

시스템은 필요 없어진 사람을 버린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우회당하고 갈아 끼워지는 것이니, 이것은 폐기다. 창조자는 자기가 필요 없어지는 세상을 만든다. 자기 변화를 세계에 박아 넣어 그 세계가 스스로 굴러가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확장이다. 하나는 끝이고, 하나는 데뷔다.

확장의 공리가 타인의 My를 데뷔시키는 일이라고 했을 때, 그 데뷔의 끝이 바로 이 자리다. 데뷔란 누군가를 무대에 세우는 일이 아니라, 끝내 내가 필요 없어질 만큼 그가 자기 천하를 갖게 하는 일이다. 내가 계속 필요한 세계는 아직 확장이 끝나지 않은 세계이고, 내가 없어도 타인의 세계가 굴러가는 상태가 확장의 완성이다.

66.4 이 칼날은 자기 자신에게도 향한다

이 명제는 바깥을 향한 훈수가 아니라 이 장치 자신에게 먼저 겨눠진다. AngraMyNew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이 언어가 널리 읽히는 상태가 아니라 누군가 이 언어 없이도 자기 천하를 세우는 상태다. 사토시가 사라져도 비트코인이 도는 것처럼, 누군가 떠나 자기 세계를 세울 때에야 이것이 교회가 아니었음이 증명된다. 창시자가 불필요해지는 것이 이 장치의 실패가 아니라 유일한 성공 조건이다.

66.5 한계

이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필요 없어짐은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라 쏟아부음의 결과여야 하고, 자기를 지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기를 다 쓴 끝에 따라오는 상태다. 쏟지 않은 자의 “필요 없음”을 확장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리고 이것은 좋은 리더가 자기 없이도 조직을 굴린다는 경영론이 아니다. 조직의 효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기를 다 쓰고 그 흔적이 자기를 넘어서는 미학을 말하는 것이다.

66.6 맺음

다 쏟아붓고 나면 내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온다. 그런데 그 세상은 죽음이 나를 지워서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서 내 손으로 지어 도착하는 것이다. 내가 필요 없는 세상이 다 쏟은 자가 끝에서 받아드는 안도였다면, 이 글은 그 안도를 향해 처음부터 겨누는 설계다.

필요한 사람으로 남으려 애쓰지 말고 내가 없어도 아름다운 세상을 지어라. 그 세상이 나를 더 이상 찾지 않는 날, 그것은 폐기가 아니라 나의 마지막 작품이다.

66.7 관련 문서